홍수영 정치부 기자
그렇기에 12일 한국당의 새 원내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누박(누가 뭐래도 친박)’의 숫자였다. 이는 정권을 잃고 온갖 풍파를 겪는데도 숨죽이고 있던 의원들의 속마음을 보여줄 지표였다. 선거 결과 복당파인 김성태 의원(108표 중 55표)이 승리를 거머쥔 가운데 ‘골박(골수 친박)’인 홍문종 의원은 35표를 얻는 데 그쳤다. 20대 국회 출범 당시 친박계는 70∼80명에 육박했다. 이에 비하면 확연한 퇴락이었다. 공식적인 숫자에 친박계도 스스로의 몰락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사실 친박계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2014년 5월 당내 국회의장 경선(정의화 의장 당선), 같은 해 7월 당 대표 선거(김무성 대표 당선), 이듬해 2월 원내대표 선거(유승민 원내대표 당선)에서 친박계 후보는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친박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한다는 미명하에 공천과 당 운영에서 갖은 작패를 부렸다. 그러면서 보수 정당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이번에 홍 의원을 찍지 않은 72표는 ‘친박의 재등판은 꼭 막아야 한다’는 의원들의 집단적인 의사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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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친박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친박은 명실상부한 당내 소수파가 됐다. 또 몰락하는 순간까지 누구 하나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재기의 가능성을 스스로 박제한 채 생명 연장을 위한 몸부림만 치다가 정치적 유산도 없이 파산했다.
국회의 탄핵이 있은 지 1년, 세상은 천지개벽했는데 한국당의 변화는 너무도 더뎠다.
한국당 의원들이 성찰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간 뇌사 상태에 빠진 친박계에 호흡기를 달아준 사람은 누구였던가. 다름 아닌 침묵으로 묵인했던 한국당 의원들 자신이다. 사석에서는 친박의 행태에 온갖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정치적 의리와 지역민 정서를 핑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혹시 지금 내 손에 피 묻히지 않고 ‘비박당’으로 탈색했다고, 역시 집 나가지 않길 잘했다고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