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사진)이 쓴 피아노곡 ‘라 발스’ 악보에 적혀 있는 작품의 묘사입니다. ‘라 발스’는 프랑스어로 왈츠라는 뜻입니다. 라벨은 왈츠를 사랑했고, 특히 그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왈츠를 자기 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처음 가진 것은 1906년이었지만 작업은 미뤄졌고 14년이 지나 1920년 오늘, 12월 12일에야 처음으로 이 작품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두어 세대 전 다른 나라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하지만, 왜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사람들이 보일까요? 뭔가 초월적인, 현실과 벗어난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일까요? 음악도 딱 그 묘사와 같습니다. 조용히 시작되는 첫 부분은 모호하고도 희미해서 왈츠인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구름이 걷힘’을 표현하듯이 솟아오르는 듯한 힘찬 왈츠가 변주되고, 결국 쿵쾅대며 넘어지듯이 소란스럽고도 갑작스럽게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라벨이 처음 이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이른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의 절정기였습니다. 그러나 1914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은 파국을 맞았고, 전쟁 전과 같은 우아한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세상은 효율과 기능을 강조하는 강철과 석유냄새의 ‘현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라벨은 이미 지나가고 없는, 돌아가고 싶지만 허깨비같이 사라진 옛날을 묘사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올해 밴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이 라벨의 ‘라 발스’를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연주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