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산업부 차장
유통기업들은 해마다 경쟁적으로 점포 수를 늘려왔는데 내년은 유통업계의 ‘큰형’ ‘둘째 형’인 백화점과 대형마트 신규 점포가 한 곳도 늘어나지 않는 특이한 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3년 11월 국내 첫 대형마트인 이마트 창동점이 문을 연 지 25년 만의 일이다. 백화점은 3개 회사 모두 계획 자체가 아예 없다. 대형마트의 경우 신세계그룹이 내년 말까지 이마트 2개 점포를 추가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긴 했었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 이미 “목표일 뿐 사실상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출점 제로’의 이유는 간단하다. 점포를 내는 데 드는 돈보다 기대 수익이 크지 않아서다. 명제는 간단하지만 그 뒤에 있는 배경은 꽤나 복잡하다.
건축 허가, 준공 허가 등의 단계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얼마나 빨리 행정절차를 처리해 주는지도 관건이다. 돈을 빌려 건물을 짓고도 문을 못 열면 이자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예전에는 대형마트 인허가부터 점포 오픈까지 평균 14개월 정도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이 기간이 2, 3년 정도로 늘어났다. 작년 6월 문을 연 이마트 김해점은 무려 4년 넘게 소요됐다.
다음은 줄어든 기대 수익이다. 어렵사리 점포를 낸다 한들 수많은 규제가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대규모점포는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매월 공휴일 이틀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유통산업발전법 제12조 2). 게다가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들은 이름만 ‘발전법’이지 대부분 규제를 더 강화하는 법안들이다. 복합쇼핑몰도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월 2회 휴업을 월 4회로 늘려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대규모점포로 등록하면 지역상권 발전 기여금을 내야 한다는 법안도 있다.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새로 점포를 내면 투자액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성장’을 생존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 기업들이 스스로 출점을 멈춘 까닭이다.
대형마트 하나를 지으면 3000m² 규모 점포를 기준으로 보통 5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큰 점포의 경우 한 번에 1000명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규제로 묶어두기엔 아까운 기회다.
재화나 서비스 10억 원어치를 생산할 때 필요한 직간접 취업자 수, 즉 취업유발계수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지난해 기준 각각 10.5명, 23.0명(현대경제연구원)이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왜 필요한지, 유통산업 규제 강화에 왜 신중해야 하는지, 여기에 답이 있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