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멋진 신세계/김양식 등 지음/304쪽·1만4900원·서해문집
‘은진미륵불’이라 불리는 충남 논산시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조선 후기 미륵사상은 불교와 도교 샤머니즘 요소가 합쳐져 희망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며 당대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서해문집 제공
이 책은 의적 활빈당부터 천주교와 동학사상, 미륵신앙, 정감록, 다산 정약용의 목민정신까지 조선인들이 꿈꿨던 7가지의 유토피아 세계를 분석했다. 2015년부터 진행된 역사학연구소의 대중강연 ‘역사서당’에서 소개된 강의들을 묶었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등 국내 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저자로 참여했다.
19세기 후반부터 활동한 의적 집단 ‘활빈당’은 유토피아 건설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소설 ‘홍길동전’ 속 활빈당의 이름을 땄고, 의로운 도적질을 강조하며 활동했다. 호형호제를 꿈꾼 홍길동과는 달리 현실세계의 활빈당은 지배층의 수탈과 봉건제도 자체에 대한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양반가의 무덤을 도굴하는 ‘굴총’을 주된 약탈 수단으로 삼았다. 조상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은 양반사족이 주도하는 유교사회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 표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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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의 무명 동학농민군 위령탑.
책에선 행정을 통해 이상세계를 구현하려 한 다산 정약용의 행보에 주목한다. 1797년 황해도 곡산부사로 부임한 다산은 ‘관질’이란 제도를 도입해 불구자와 중환자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또 부당한 세금 징수를 막기 위해 정확한 인구 상황을 반영한 ‘척적(尺籍)’이란 장부를 만들면서 “백성들에겐 이롭고 아전은 싫어한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산은 이 같은 노력과 경험을 ‘목민심서’에 한데 담았다.
200∼3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묘하게 우리 사회의 현실과 겹치는 모습이 많다. 멋진 신세계를 꿈꾼 조상들의 도전과 좌절이 주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