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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내친구] 시인 야구단 ‘사무사(思無邪)’…그들이 꿈꾸는 역전 만루홈런

입력 | 2017-11-17 05:45:00

시인야구단 ‘사무사’ 선수들이 어깨에 나란히 손을 올리고 동그란 원을 만들어 모였다. 이들은 시와 야구를 사랑하는 공통점으로 하나가 됐다. 파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박형준 시인 “詩人이 터지면 무섭게 쾅쾅! 우린 반전있는 도깨비팀”

미디어 리그 1위 팀 상대 통쾌한 역전승
이긴 날 저마다 타율 자랑…이 맛에 야구
“야구와 시는 반전이 있다는 점이 닮았죠”


시인야구단 ‘사무사(思無邪)’. 생각할 사에 없을 무, 사악할 사 자를 쓴다. 공자가 시경에 담긴 300편의 시에 대해 남긴 말인데, 풀이하면 ‘시라고 하는 것은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다. 시인들은 시를 정의하는 이 중요한 세 글자를 야구단의 이름을 짓는데 냉큼 가져왔다. “야구를 하면서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되 사악함은 버리자”는 것이다. 시의 정신을 되새기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다짐하면서.

사무사 3루수 김태형이 11일 파주 NH연수원에서 열린 미디어리그 바코더스와의 경기에서 호쾌하게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파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사무사를 만나던 날 그들이 참가하는 미디어리그의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상대 바코더스는 당시 1위팀. 승률은 무려 9할이었다. 반면 사무사는 5승5패를 기록 중이었는데, 다수의 멤버들이 “오늘은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들 했다. 사회인야구는 2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어 콜드게임까지 걱정했다. 말은 씨가 되어 2회 초까지 내리 7점을 내줬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2회말 본격적으로 사무사 타자들의 장타가 터지며 금세 7점을 만회했다. 그러자 선발 투수로 나선 박형준 시인은 “우리는 도깨비 팀이다. 한 번 터지면 무섭게 터진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고, 동료들을 향한 독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어 3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 세운 사무사는 8점을 보태 한 이닝을 덜 치르고도 15-12로 이겼다.

예상을 뒤엎은 승리 덕분에 사무사란 이름이 갖는 두 번째 의미도 들을 수 있었다. 시인들은 작품 속 단어 하나하나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해석의 즐거움을 안겨주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무사에도 다른 뜻을 숨겨뒀다. “죽을 사(死) 자를 써서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끝까지 뛰면 살 수 있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들 하지만, 정말 ‘사무사’다.

선발투수 박형준이 역투하고 있다. 파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타율이 뭐라고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너나할 것 없이 ‘진짜’ 야구 선수가 된다. 박형준 시인은 사무사 내에서 두산의 간판 투수 유희관으로 통한다. 유희관처럼 구속은 느려도 제구력을 강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물론 몸이 마음을 완벽히 따르지는 못한다. 간단한 수비 상황에서도 범실로 쉽게 점수를 내주곤 한다. 그럴 때면 프로 선수들이 느낄 법한 감정이 가까이 와 닿는다. 2루수 김병호 시인은 실책을 한 뒤 “KIA 김주형 선수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가슴을 부여잡는다.

시합이 끝난 뒤엔 더하다. 마치 프로 선수들이 제 기록을 챙기듯 타율, 방어율 등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게임원’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개인과 팀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회인야구에서 6할을 치면 프로야구에서 3할을 치는 것과 같다. 2로 나누면 된다”는 나름의 셈법도 있다. 특히 이긴 날에는 저마다 높은 타율이며 본인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자랑하기 바쁘다. “사실 그 맛에 야구를 하는 것”이란다.

이토록 귀하게 여기는 타율을 놓고는 팀 내 경쟁 구도가 생기기도 한다. 주로 하위권 타자들 사이에서다. 물론 당사자들은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라이벌이 아니다”라고 부인하지만, 이내 타율의 우위를 무기로 삼아 상대적 약자를 놀려댄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는 동료들에겐 둘의 신경전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홈플레이트를 밟고 들어온 박형준(오른쪽)이 포수 김백상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파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힘들어도 즐거운 것을

사무사가 속한 미디어리그는 총 11경기로 봄·여름·가을에 걸쳐 한 달에 1∼2번 토요일에 경기가 열린다. 경기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한다. 우선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있다. 보통 시 한편에 3∼5 만원을 받는데, 연회비로 30만원이란 큰 돈이 든다. 다행히 이러한 사정을 전해들은 문학수첩 강봉자 대표가 쾌히 연간 500만원의 후원금을 내기로 했다. 덕분에 팀 창단 후 6년 여간 입어온 유니폼도 새로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선수 구성도 쉽지 않다. 문학행사가 주로 주말에 열리는 까닭에 불참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사무사의 사령탑 유종인 시인은 “승패 여부를 떠나 경기가 성사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감독으로서 야구단 운영에 책임이 있으니 라인업을 짜는데 항상 신경을 쓴다”고 털어놨다. 4번 타순을 맡는 홈런 타자였던 그는 감독이 된 뒤로 타격 감각까지 떨어졌다. 이러한 고충을 알기에 감독직은 2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맡고 있다.

그러나 야구를 매개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든 시간이 즐겁다. 김요안 문학평론가는 “내가 추위를 못 참아 겨울에 밖에 나오기를 싫어하는데, 경기를 하면 추운 날에도 뜨거운 마음을 갖고 나온다”고 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매년 한번씩은 지역의 문인들과도 친선 경기를 갖는다. 지난해에는 통영에 다녀왔고, 18일에는 하동에 간다. 공기 좋은 곳에서 간만에 만나는 이들과 야구 경기도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고 돌아올 요량이다. 야구는 보통 우여곡절이 담긴 인생에 비유되곤 하는데, 알고 보면 시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김병호 시인은 “둘 다 역전이 가능하다. 시에도 기승전결이라는 흐름이 있는데, 마지막엔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안(詩眼)이 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반전이 있다”고 했다.

9회말 2아웃 타석에 들어선 사무사의 기분 좋은 상상 끝엔 언제나 역전 만루홈런이 기다리고 있다.

파주 |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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