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정치부 기자
장관이 국회 가서 파스타 먹은 얘기를 새삼 꺼낸 것은 당일 저녁을 먹은 장소가 잘못됐다는 생각에서다. 그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첫날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빈만찬이 열렸다.
만찬에는 우리 측 70명, 미국 측 52명 등 총 122명이 참석했다.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고급 식탁보가 깔린 큼지막한 테이블 13개도 마련됐다. 화제가 된 ‘독도 새우’도 식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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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장관들도 자리했다. “주요 정부부처 장관들이 참석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외교, 기획재정, 국방, 교육, 과기, 산업통상자원, 행정안전, 문화체육 등 8명이다. 특히 행사 주무부처인 외교부에선 장관 외에 주미대사, 본부장, 국장급 관료에 주미대사의 부인까지 참석했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의 자리는 없었다.
장관 업무의 경중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핵심 의제는 북한 문제였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시간 대부분을 북한 얘기로 채웠다. 그런데도 자나 깨나 북한만 연구하는 통일부 장관이 만찬장 말석에도 앉지 못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밥 한 끼 갖고 왜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통일부 장관이 미국 측 인사들을 직접 만날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북한 관련 해외 업무는 외교부가, 대북 업무는 통일부가 나눠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문제는 이미 세계적인 이슈가 된 지 오래다.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 얘기만 꺼내면 미국 측이 펄쩍 뛰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이다. 강력한 대북압박 국면에서 한국이 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통일부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또는 핵심 측근들과 스킨십을 쌓고 소통하는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열린 ‘공짜 기회’ 아닌가. 9월 26일 뉴욕의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선거자금 모금 만찬의 최저 입장료는 3만5000달러(약 3900만 원), 트럼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원탁 자리는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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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역할이 지대하다” “주도적 능동적 역할을 하라”면서 통일부에 한껏 힘을 실어준 것이 불과 석 달 전 일이다. 청와대가 통일부의 자존감을 최소한이라도 챙겨줘야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어깨를 펴고 상대하지 않을까 싶다.
황인찬 정치부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