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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부인 ‘딸 사망의혹’ 무혐의… 영화에서 시작된 ‘음모론’에 경종

입력 | 2017-11-11 03:00:00



가수 고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52)가 대중에게 ‘악녀(惡女)’로 낙인찍힌 계기는 이상호 씨가 제작한 영화 ‘김광석’이 8월 30일 개봉하면서부터다. 이 씨는 ‘김광석’에서 서 씨가 남편을 살해한 뒤 자살로 위장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영화 개봉 이후 서 씨가 딸 김서연 양(당시 16세)이 숨진 사실을 10년간 숨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남편의 저작권 수입을 독식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김 씨는 사실 아내가 살해했을 수 있고, 이 아내가 딸까지 죽게 만들어 돈을 탐했다는 이 씨 등의 주장은 대중을 현혹시켰다.

그러나 서 씨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0일 무혐의로 결론짓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 서 씨가 아픈 딸 방치한 증거 없어

이 씨와 김 씨 친형이 9월 서 씨를 고소 고발한 핵심은 두 가지다. 서 씨가 2007년 12월 아픈 딸을 방치해 숨지게 했고(유기치사), 김 씨 음원을 둘러싼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딸의 죽음을 은폐(사기)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서연 양 사망 전 5일간의 행적과 당시 주치의, 119구급대원, 서연 양 담임교사 등 47명을 조사했지만 두 가지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 씨는 2007년 감기 증세를 보인 딸을 병원에 세 번 데려갔다. 모두 단순 감기로 진단해 서 씨로서는 폐렴 발병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서연 양이 앓던 난치병인 가부키 증후군이 면역 기능을 약화시켜 폐렴이 급격히 진행돼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 씨가 딸을 미국과 독일까지 데려가 진료받은 사실도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서연 양 일기장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에서 나타난 모녀 관계도 원만했다. 일기장에 “엄마와 함께 눈싸움했다” “학교 현장체험을 갈 때 엄마가 차로 태워줘 재밌게 놀았다” 등 친근한 모녀였음을 드러내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 씨가 ‘첫눈이 온다. 예쁜 내 딸이 더 예뻐지길 바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서연 양이 ‘절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내 마음을 받아줘♡’라고 답신한 기록도 확인됐다.

경찰은 서 씨가 남편 측 가족과 벌인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유리한 결론을 끌어내려고 딸의 죽음을 숨겼다는 의혹도 무혐의 판단했다. 서 씨가 딸의 죽음을 법원에 알릴 법적 의무가 없고, 딸이 살았든 죽었든 소송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친정 식구에게도 서연 양이 숨졌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2007년 12월 서 씨가 남편의 친형 등 시가와 벌이던 민사소송은 대법원 계류 중이었다. 그전 항소심에서는 서 씨가 음원 수익을 시가 측과 나눠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듬해 6월 김 씨의 지식재산권이 전적으로 서 씨와 서연 양에게 있다며 항소심 판결을 뒤집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비영리 목적의 김광석 추모공연에서는 시가 측이 무상으로 음원을 쓸 수 있다’는 조건으로 조정이 이뤄져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종결됐다.

경찰은 서연 양이 숨졌다는 사실을 법원이 알았더라도 재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민사소송법에 따라 서연 양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소송을 진행하면 그만이고, 소송에서 이겨 얻은 지식재산권은 서연 양 상속인인 서 씨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 “이 씨, 영화 도구 삼아 무책임한 의혹 제기”

서 씨는 이 씨와 김 씨의 친형,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을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서 씨 측 박훈 변호사는 이날 “이 사건의 본질은 김광석 친형의 무리한 주장을 이 씨가 아무런 검증 없이 나팔을 불면서 서 씨를 연쇄살인범으로 몬 것이다. 이들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부화뇌동한 국회의원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씨가 ‘김광석’을 통해 서 씨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사실상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씨는 영화가 개봉된 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영화를 봐야 한다” “(타살을 입증할) 99%는 취재했다”며 홍보했다. 그러나 영화에는 서 씨가 살해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설득력 있는 물증이나 근거는 사실상 나오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이 영화는 관객 9만8200명을 끌어모아 매출 7억7241만 원을 올렸다.

이 씨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도 ‘다이빙벨을 투입하면 실종자를 구할 수 있는데 해경이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종자 수색이 난항을 겪자 여론에 떠밀린 정부는 다이빙벨을 투입했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다이빙벨은 해류가 강한 해역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하지만 이 씨는 10월 직접 제작한 영화 ‘다이빙벨’에서 “해경이 다이빙벨의 구조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해 구조작전이 실패했다”며 ‘음모론’을 들고나왔다. 이 씨는 이 영화로 관객 5만308명을 모아 매출 3억4859만 원을 거뒀다.

김동혁 hack@donga.com·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