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 산업부 기자
중소벤처기업계에서 전속 거래 이슈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생산성이 낮은 대기업 노조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수십 년간 전속 관계에 있는 하청업체의 납품 단가를 무리하게 깎아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7일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자와 자동차 분야의 대기업과 이들의 전속 부품협력업체 간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10%포인트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소업체들의 임금은 대기업 직원 임금의 절반 이하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답답해한다. 부품 국산화 등을 위해 전속 거래를 통해 중소기업을 키워 놓으면 더 이상 성장하려 하지 않고 안주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전속 거래 관행을 끊어도 문제다.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온실 밖으로 나간 한국의 중소부품업체들이 야생의 산업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레토릭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한국의 대기업은 변화의 파고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 산업은 슈퍼사이클의 정점에 있고, 전자업체들은 자동차업계로 뛰어들면서 산업 간 융·복합이 가속화되는 중이다. 조선업 역시 고부가가치 사업 구조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영국과 일본 등이 산업을 다른 나라로 넘긴 것 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해외 진출과 자동화, 다른 산업으로의 이전까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하지만 온실 속에 살아온 많은 중소부품업체는 이런 산업 변화의 파고를 제대로 넘을 수 있을까. 일부 중소기업들은 전속 거래의 불공정 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제재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공정거래 문제로 국한해 다룰 사안만은 아니다. 산업 구조조정의 관점에서 중소부품업체들이 온실 밖으로 나왔을 때의 상황을 산업계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