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남 전 한글학회 부산지회장
한자어에는 ‘가로 횡(橫)’이 든 말에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 ‘남의 물건을 제멋대로 가로채거나 불법으로 가짐’을 횡령(橫領)이라 하고, ‘뜻밖의 재앙으로 죽음’을 횡사(橫死)라 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을 횡행(橫行)이라 한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사회에서는 질서를 위해 수평적인 횡적 관계보다 수직적인 상하 관계, 곧 종적인 관계를 중시했다. 그래서 ‘횡(橫)’은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체제를 어지럽게 한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눈 목’ 자를 세워 쓴 연유이며, 세로글씨의 ‘현수막’이 생긴 배경이다.
국어사전들은 이 두 말을 달리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플래카드를 현수막으로 순화한다고 했다. ‘현수막’의 현(懸)은 ‘걸다, 매달다’란 뜻이요, 수(垂)는 ‘아래로 드리우다’란 뜻이다. 그러므로 ‘매달리는 힘’이 현수력(懸垂力)이요, ‘여러 가지 기계에 매달려 하는 운동’이 현수운동(懸垂運動)이며,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쇠밧줄을 매달아 세운 다리’가 현수교(懸垂橋)다.
류영남 전 한글학회 부산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