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청탁금지법 3·5·10 조정할수도… 농축수산물 예외는 곤란”

입력 | 2017-10-31 03:00:00

취임 4개월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이 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중 상한액을 규정한 이른바 ‘3·5·10’ 조항에 대해 “필요하면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65·사진)은 6월 말 취임 이후 줄곧 진퇴양난이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령의 ‘3·5·10’(식사 접대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제한) 조항 때문이었다.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와 자유한국당은 ‘3·5·10’ 조항이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규제라며 상향 조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민들은 ‘한 끼에 3만 원이나 하는 식사도 부족해서 더 올리겠다는 건가’라며 반발한다. 특정 부처나 농축수산업 등 특정 업종 여론에 밀려 법 시행 1년이 조금 지나 시행령에 손을 대면 법 제정 취지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국민 89.2%는 이 법을 지지한다는 최근 여론조사(한국행정연구원-한국리서치 일반 국민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취임 4개월을 맞은 박 위원장은 ‘3·5·10’ 가액 조정의 기로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발의 부처로 가액 조정 등 시행령 개정 권한을 갖고 있다. 박 위원장을 26일 권익위 서울종합민원사무소에서 만났다.



―3·5·10 가액 조정의 총대를 메고 있는데….

“농축수산가, 화훼농가 등 이 법 영향업종의 매출 감소와 소비 위축 등 피해에 대해선 법 소관 부처로서 안타까움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민 다수는 이 법의 안정적인 유지를 바라고 있다. 식사, 선물 등의 적정액이 얼마인가는 2+2=4처럼 정답이 없다. 3만 원짜리 식사를 하면 청렴하고, 5만 원이면 덜 청렴한 건 아니다. 정확한 답은 없지만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시행령에 ‘2018년 12월 31일까지 상한액(가액)의 타당성을 재검토해 상향 조정 등의 조치를 한다’고 해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내년 12월까지 끌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법은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고, 부정적·긍정적인 측면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기에 개정하는 경우라도 정말 신중해야 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진행 중인 법 시행의 경제·사회적 영향에 관한 연구 결과를 올해 11, 12월 대국민 보고를 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법 시행령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 필요하면 가액 조정까지도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농축수산물만이라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정 품목에만 예외를 둔다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추가적인 예외 요구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농축수산물을 예외로 한다고 해서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대폭 줄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농축수산가나 화훼농가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익위 차원의 대처만이 아니라 관계부처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소관부처로서 시행령상의 보완책을 강구하겠지만 전체적인 내수 부진 문제는 이 법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이 법이 (내수 부진의) 알리바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법 시행과 농축수산업계, 화훼업계 등의 매출 감소 간의 인과관계가 증명될 수 있을까.

“법 시행에 따른 농축수산가의 피해가 딱 떨어지는 수치로 나오는 건 어렵다고 본다. 일부 업종의 매출 감소에는 부동산 경기 하락, 정치적인 불확실성,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 등 다른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도 ‘법 시행 이후 고급 음식점에서의 법인카드 사용이 감소했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심리 변화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기에 법 시행 파급효과만을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운데도 가액을 앞당겨 상향 조정한다면 권익위가 일부 비판 여론을 의식해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3·5·10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가액을 조정한다고 법이 본래 취지에서 후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2년은 지켜보면서 영향을 평가해 보완책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부 학자들도 이 법에 대한 조급한 평가는 지양했으면 한다. 가액을 유지하든 조정하든 누구나 인정할 합의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법 적용이 공직자 등으로 한정되는데도 법 내용을 잘 몰라 일부 민간인도 3만 원 이하 식사를 한다.

“법 시행 초기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손님이 인절미를 미용사에게 주니까 미용사가 ‘김영란법 위반 아니에요?’라고 하더라. 시행 초기 오해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에 그간 부정 청탁 문화, 과도한 접대 문화가 만연해 있었고, 그것에 대해 법 적용 대상이든 아니든 다 함께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공직사회에서 3·5·10에 맞춰 더 청렴하게 생활하게 되자 일반 국민들도 이 모습을 따라가고 있다. 사회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법 시행 1년이 지났음에도 모호하다는 지적 많다.


“일부 모호성은 인정한다. 어떤 조항들은 예외 조항이 있고, 또 예외의 예외 조항이 있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 받을 수 없다고 해놓고, 직무와 관련되더라도 일정액 이하의 선물은 받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법률가들이 볼 땐 논리적으로 해명이 되지만 일반인들은 ‘받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할 것이다. 시간이 더 가면 구체적인 위반·처벌 사례들이 축적되면서 복잡함이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 법은 일반적인 원칙을 정하는 것이지 무수한 개별 사례까지 일일이 적시해놓고 ‘이건 맞고 이건 틀리다’라고 정하는 건 아니다.”



―‘카네이션법’ ‘캔커피법’으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나도 법 시행 전 교수로 재직할 때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는 받았다. 법 시행 이후인 지금 어느 교수가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받았다고 해서 법을 위반했다고 할 수는 있어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 법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정한 직무수행을 위한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카네이션 한 송이가 위법일까 아닐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과거에 누가 그런 고민을 했겠나. 다만 카네이션에 담을 수 있는 고마움은 편지나 이메일 등 논란이 없는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법학자인데 김영란법처럼 우리 사회를 더 투명하게 하기 위한 ‘박은정법’을 만들 생각은 없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다. 공직자의 사적 이해관계가 개입돼 공정한 직무수행이 어려울 경우 이를 수행할 수 없게 하는 법이다. 이해충돌방지 조항은 청탁금지법 원안에 포함됐으나 2015년 국회 통과 당시 빠졌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돼 청렴 문화가 확산된 만큼 공직사회도 이제는 이 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있는 ‘공공재정 부정청구 등 방지법(일명 부정환수법)’ 제정도 이뤄내겠다. 각종 보조금 등을 허위·과다 청구할 경우 이를 환수하고 최대 5배까지 제재부가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청탁금지법을 포함한 이 세 가지 법은 반부패 개혁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정확히 어떤 기관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국민권익위는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 3기관을 통합해 (2008년) 출범했다. 부패방지, 민원 등 고충처리, 행정심판, 제도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다. 통합 이후 권익위의 정체성이 다소 약화된 부분이 있다. 국정 및 정부운영에 있어 중요한 기능을 수행함에도 그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건 사실이다. 청탁금지법도 알고 국민신문고도, 행정심판도 아는데 정작 권익위는 잘 모르더라. 국가인권위원회와 헷갈려하는 분들도 있다. 새정부 국정과제에도 권익위가 반부패 청렴정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조직과 기능을 강화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를 위해 조직을 재설계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권익위 명칭을 한 번에 그 역할이 와닿는 이름으로 바꿀 계획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어떤 인연이 있었나.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던 문 대통령이 ‘정부에서 일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는 내가 이화여대 법대 교수에서 서울대 법대 교수로 옮긴 직후였다. 국립대로 옮길 때 주변에 ‘국민이 주는 돈으로 일하게 됐으니 새로이 출발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공직을 준다고 금방 가볍게 말을 바꾸면 되겠나. 정중히 고사했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께 임명장을 받을 때 날 기억하더라. ‘참여정부 때 모시려 했는데 불발됐다. 이번에 함께 일할 수 있게 돼 반갑다’는 취지로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이화여대 법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법학 박사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 △한국법철학회 회장 △참여연대 공동대표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