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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4배 규모 사막신도시…사우디 왕세자의 ‘개혁 야심’

입력 | 2017-10-26 03:00:00

리야드 북서쪽에 565조원 투입
도시 모든 에너지 태양광-풍력으로…로봇이 단순업무-노인 돌보기 담당
여성들은 히잡 착용 안해도 될듯
극단적 이슬람주의 근절도 밝혀… 개혁 움직임에 긍정-우려 시선 교차




‘수도 리야드의 북서쪽 홍해 인근 사막과 산악 지대에 서울 면적의 약 43.8배(2만6500km²)에 이르는 첨단 미래형 도시 개발. 총예산 약 5000억 달러(약 565조 원).’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스터 에브리싱’ 혹은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32)가 또 하나의 대형 개혁 카드를 던졌다. 그가 24일 발표한 야심 찬 국토 개발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카타르의 그것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규모다. 지난달 여성 운전 허용에 이어 또 다른 파격 조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날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행사에서 ‘네옴(NEOM)’이란 이름이 붙여진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를 직접 소개했다. 행사에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 같은 세계 경제의 거물들이 참석했다.


프로젝트 곳곳에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 개혁’ 청사진이 들어 있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방침에 따라 도시에서 쓰는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얻을 계획이다. 애플과 실리콘밸리에 관심 많은 젊은 지도자답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네옴에서는 단순 반복 업무와 노인 및 어린이 돌보기 등은 로봇이 담당한다. 8시간 안에 전 세계 인구의 70%가 살고 있는 지역에 갈 수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반영해 최첨단 공항도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네옴에서는 다른 사우디 도시들과 달리 여성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네옴 홍보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파티를 즐겼다. 왕세자도 FII 행사 중 열린 패널 대담 때 히잡을 쓰지 않은 미국 폭스뉴스 여성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CNN과 사우디 아랍뉴스 등에 따르면 왕세자는 네옴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 이곳(네옴)은 관습에 익숙한 사람과 기업을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패널 대담 중 2G폰과 최신형 스마트폰을 꺼내 비교하며 “현재의 사우디와 네옴은 이 두 휴대전화의 차이와 같다”고 말해 웃음과 박수를 이끌어냈다.

왕세자는 아랍권 국가 중에서도 보수·강경 성향이 가장 강해 극단주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받는 사우디의 이슬람주의를 버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우리는 앞으로 30년을 극단주의 사상에 맞서면서 살아갈 수 없다”며 “오늘 당장 그것(극단주의 사상)을 없애 버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는 (보수화 정책이 추진되기 전인) 1979년 전에는 지금 같지 않았다”며 “(우리의 변화는) 모든 종교와 전통에 열려 있는 예전의 온건한 이슬람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비전 2030’으로 설명되는 왕세자의 사우디 탈석유화 및 사회문화 개혁 전략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왕세자의 네옴 프로젝트와 보수적 이슬람 개혁 움직임에 대해 국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사우디의 경제 성장과 개혁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이지만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들의 저항이나 불만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인물인 건 맞지만 네옴 건설과 온건한 이슬람 강조 같은 국가 프로젝트를 장기적,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성급하고 강경한 성향으로 예멘 공습과 이란에 대한 적대적 외교, 카타르와의 단교, 자국 내 시아파 탄압 같은 극단적인 사우디 외교의 배후로 지목된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