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산업부장
기업과 경제도 마찬가지다. 새싹을 틔우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화분에 담느냐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과 혁신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더 그렇다. 현 정권 경제정책의 ‘숨은 설계자’로 평가받는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6월 출간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강조한 내용도 따지고 보면 숨쉬는 화분에 비유할 수 있다. 슘페터식 공급혁신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기업가가 부단히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 조성을 강조했다. 생산의 3요소인 노동과 토지, 자본을 자유롭게 결합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마련해주자는 얘기다.
변 전 실장은 노동시장의 자유를 첫 손가락에 꼽으며 정규직 고용경직성 완화와 비정규직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일손이 달려도 사람 뽑기가 겁난다”(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사장)는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물론 그가 노동자의 자유를 강조한 점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일자리를 잃어도 일정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국민 기본 수요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는 복지정책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경제 운용의 핸들을 꺾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혁신성장을 동시에 추진해야 할 화두로 내걸었다. 바람직한 방향 전환이다. 하지만 관료들이 책상 서랍에서 정권에 따라 이름만 바꿔 꺼내놓는 페이퍼로 혁신성장이 가능하다면 한국은 벌써 혁신 선진국이 되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계획경제 시대의 관(官) 주도 처방전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는 숨쉬는 화분부터 마련해주는 일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경제가 잘나가는 비결은 금융 재정정책에 이어 세 번째 화살로 불리는 성장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과 기업인을 우대하고 이들의 숨통을 틔워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분위기 위에서 총리가 먼저 기업에 임금인상과 고용확대를 요구해도 기업들은 기꺼이 응했다. 우파 정권의 등장에 긴장했던 노동계도 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야당이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슘페터식 공급 혁신 전략이 나오길 기대한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