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호 기술 연구 잇따라
상공에서 수소폭탄이 터졌을 때의 모습을 그린 상상도. 수소폭탄이 터지면 고출력 전자파(EMP)가 지상까지 퍼져 많은 전자기기를 영구적으로 파손시켜 대혼란을 일으킨다. 사진 출처 블랙볼트닷컴
영화 ‘매트릭스’에서 EMP는 기계군단 ‘센티넬’을 한 번에 무찌르는 막강한 공격법으로 등장했다. EMP는 강력한 전자파로 전자기기를 파손시킨다. 가령 220V를 사용하는 기기에 이보다 높은 500V의 전압을 가하면 회로가 타버려 쓸 수 없게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통신시설이 파괴되고 금융망이 마비되는 혼란이 올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전자파를 흩뜨려 EMP 공격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방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전자파를 반사하는 재료로 회로 등을 코팅해 전자기기 자체를 보호하는 방식과 주요 통신시설이 위치한 공간을 방호할 ‘차폐실(shielding room)’을 만드는 방식이다.
연구진이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한 신소재 ‘멕슨(MXene)’은 금속이 아니라 고분자 물질임에도 전기전도성이 우수하다. 1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두께의 멕슨을 층층이 쌓아올려 만든 4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두께의 차폐 필름은 금속만큼의 차폐 성능을 보였다.
KIST 연구진이 개발한 전자파 차폐용 복합 소재. 차폐율은 99.99%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연구의 주저자인 이승환 KIST 연구원은 “멕슨과 폴리카프로락톤 복합체는 모두 가공이 쉬워 스프레이처럼 뿌려 간단히 반도체 기판을 차폐제로 코팅할 수 있다”며 “EMP 공격은 물론이고 부품들이 고도로 집적된 최근 전자기기의 내부에서 전자파 간섭으로 생기는 오작동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통신 시설의 장비들을 전자파 차폐 능력을 가진 특수한 공간 내부에 두는 방호법도 있다. 현재는 건물 안에 특수 제작한 차폐실을 둔다. 철판을 빈틈없이 용접해 어떤 전자파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는 육면체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김성욱 건설연 구조융합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EMP 방호는 국가 안보의 문제라 국가 간 기술 교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독자적 연구가 필요하다”며 “고출력 전자파 방호용 건축자재 연구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향후 국가 주요 정보통신 기반 시설에 적용해 방호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