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셸링은 냉전시대 수많은 핵전쟁 가상 워게임에 참여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이어진 불발(不發)의 사건을 그는 이런 감탄의 수사들로 경축하며 위태로웠던 지난 60년을 회고했다. 그것이 성취인지, 행운인지는 셸링도 장담하진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경이로운 불발’은 12년이나 이어졌다.
위태로운 ‘2차 핵시대’
그렇게 핵무기는 사실상 ‘무용(無用)의 무기’로 굳어졌다. 하지만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을 뿐 쓸모없는 무기는 아니다. 그 진가는 ‘무용의 쓰임새’, 즉 억지력(deterrence)에 있다. 적이 공격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보복으로 입게 되는 손해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도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적의 선제공격(제1격)에도 살아남아 치명적 손해를 줄 수 있는 보복능력(제2격)을 갖춰야 한다.
1950년대 보복 가능한 차세대 미사일이 등장했을 때 핵무장 해제를 주장하는 군비축소(disarmament) 주창자들은 이것이 핵무기 증강만을 낳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반면 셸링 같은 군비통제(arms control) 주창자들은 이 미사일이 제1격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며 찬성했다. 결국 군비통제론에 따라 핵미사일은 방어설비가 대폭 강화된 지하 사일로에 배치됐다. 비록 핵무기의 수는 증가했지만 핵전쟁 가능성은 확연히 낮아졌다.
냉전이 끝나면서 핵무기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냉전 초기 ‘위험천만한 19년’보다 훨씬 위태로운 ‘제2차 핵 시대’가 도래했다. 공인된 핵클럽 5개국 외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보유했다. 특히 북한은 냉전시대에도 전혀 없던 ‘핵 협박’을 하며 미국과 위태로운 핵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제 세계는 ‘핵 억지력이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
核 시간은 거꾸로 간다
ICAN은 핵무기 전면 폐기와 개발 금지로 ‘핵무기 없는 세계’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 국제정치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핵보유국은 갈수록 늘고 있고 핵무기 사용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 어둡고 섬뜩한 현실의 가장 중심엔 북한이 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