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유럽 인증 통과
원전 전문가들은 그동안 다소 과소평가됐던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증명된 쾌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원전의 안전 경쟁력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만큼 정부가 원전 수출에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까다로운 유럽 시장 수출길 열렸다
EUR 인증을 받은 다섯 국가 중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인 2012년에 새로 마련된 안전기준을 충족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수원은 덧붙였다. 미국과 유럽은 원전 사업자들에게 지진 대비책으로 방수문 강화, 이동형 발전장치 및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비상냉각장치 설치 등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는 2011년 이전에 인증을 받았다는 이유로, 일본은 기준 마련 이전에 인증을 신청해 권고를 반영하지 않았다.
2015년 11월 시작된 본심사에서는 20개 분야, 4500건의 요건이 요구됐다. 한수원과 원전업계는 본심사 통과를 위해 620건의 기술 문서를 제출했으며, 800여 건의 질문에 답변서를 보냈다. 한수원은 “우수한 기술력 덕분에 최단 기간(24개월) 본심사 통과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 영국, 체코 등 수주 가능성↑
EUR 인증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주로 원전 수출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21조 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프로젝트를 따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전력공사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컨소시엄인 ‘뉴젠’의 지분 60% 인수를 추진하며 한국형 원전을 도입하자고 설득 중이다. 하지만 지분 인수가 지연되는 사이 중국이 무어사이드 원전 참여에 전격적으로 뛰어들며 수주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진행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한국 원전은 유럽 기준을 충족한 반면 중국은 유럽에서 원전 인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경쟁에서 유리한 면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동 지역에 집중했던 한국의 원전 수출 추진 지역도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EUR 요건을 요구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등에서 추진하는 원전 공사 입찰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이번 EUR 인증 심사에 참여한 체코, 스웨덴, 폴란드 등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들의 눈도장을 받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9년 원전 입찰을 예고한 체코의 경우 2015년 한국 정부와 EUR 인증 자문 계약을 맺으며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 탈원전과 원전 수출 동시 추진 가능할까
한국산 원전은 미국에서도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안전성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전체 6단계 평가 중 3단계를 마쳤으며, 항목 수로는 전체 2200개 항목 중 2100개가 심사를 받았다. 일본 프랑스 등이 1단계 문턱에 걸리는 사이 한국은 이들보다 앞서 3단계 평가를 통과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의 글로벌 양대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 수출을 둘러싼 정부의 긍정적인 태도는 곳곳에서 엿보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0일 원전 수출전략협의회를 주재해 업계에 원전 수출에 대한 정부 생각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원전 국제 행사에 서기관급 직원을 보내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업계의 우려를 샀다. 하지만 이번 EUR 인증으로 한국 원전의 수준이 확인된 만큼 수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