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그나마 워싱턴의 국제기구인 미주개발은행(IDB)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친정인 기재부의 배려였다. 귀국해선 보직이 없는 이른바 ‘인공위성’으로 떠돌았다. 박근혜 정부 때 2급으로 직급을 낮춰 가까스로 기재부 예산실에 복귀할 수 있었다. ‘노무현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인사에선 TK(대구경북) 출신에게 나라 곳간을 맡겨서 되겠느냐며 견제가 심했다고 한다.
관료로 살아남기 힘든 나라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예산실장과 ‘금융계 꽃’으로 불리는 금융정책국장은 경제 관료라면 누구나 꿈꾸는 엘리트 코스다. 박봉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예산실장을 지냈고,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은 금융정책국장 출신이다.
구윤철 유재수는 보수 정권에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늦게나마 자리를 찾은 ‘해피엔딩’ 케이스다. 정권교체 때마다 청와대 파견 공무원들은 인사에서 물먹는 게 언제부턴가 법칙처럼 돼버렸다. 보수정권에서도, 진보정권에서도 똑같았다. 정무직도 아닌 비서관, 심지어 행정관마저도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부처에선 일 잘하고 친화력 있는 ‘대표선수’를 청와대로 보낸다. 해당 부처의 얼굴일 뿐 아니라 청와대 소통창구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초기엔 서로 가겠다고 다투지만 대통령 임기 말엔 등을 떠밀어도 손사래 친다. 박근혜 정부 후반기엔 지원자가 없어 사무관을 승진시켜 청와대로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완장을 찼다가 정권 교체 후 ‘부역자’로 찍힌 선배들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 공무원에 ‘부역자’ 낙인
청와대는 지난 정부에서 성과연봉제에 앞장섰거나 새누리당에 파견된 관료 출신 공공기관장을 물갈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실력도 없이 ‘박근혜 사람’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꿰찼다면 알아서 물러나야겠지만 공공개혁 성과마저 문제 삼으면 공직사회엔 복지부동하는 사람만 살아남을지 모른다. 감사원과 검찰이 총대를 메고 버티는 공공기관장을 몰아내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이젠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