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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뷰스]해운업 살리려면 제도 정비부터

입력 | 2017-09-11 03:00:00


김인현 한국해법학회 회장·고려대 로스쿨 교수

국내 해운산업 분야는 어느 시기를 두고 반복적으로 비슷한 어려움이 닥치는 경향을 보여 왔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후 11년 만인 2014년에 세월호 사고를 겪었고, 2001년 조양상선의 파산 15년 만인 2016년에는 정기선사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인류는 유사 이래로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을 예측 가능성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때 예측 가능성은 법 제도의 확립으로 달성된다. 한진해운 사태에서도 기존의 법 제도를 잘 활용하였다면 회사가 회생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국내 다른 회사들이 인수를 해 전 세계 7위 해운사의 공중분해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진해운이 파산에 이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비싼 용선료에 있었다. 2016년 당시 이미 시장가보다 몇 배 비싼 용선계약을 수십 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진해운은 영업부문에서 적자가 수년간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도산법에 따르면 회생절차에서 관리인이 비싼 용선계약을 모두 해지하면 미이행된 용선료 채권은 모두 회생 채권으로 환치돼 회사는 10분의 1 정도만 배상하면 된다. 이렇게 조치해놓고 회사가 현재 시가로 선박을 다시 빌려서 운항하면 회생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 제대로 활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나아가 정기선 해운의 공익성이 인정되어 하역비를 국가나 공적 기금이 대납하는 제도를 미리 정비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한진해운이 회생절차에 들어갔을 때 하역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수조 원에 이르는 화주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진해운의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국내의 다른 회사들이 한진해운을 회생절차 내에서 인수할 가능성도 높아졌을 것이다.

현재 해양수산부, 선주협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학계를 중심으로 한국 정기선 해운의 부활을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거론되고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는 정기선 운항 관련 당사자들에게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부여하는 법 제도의 창설이나 보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지막 항해에 실린 화물에 대해 하역비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 등 화주들이 안심하고 우리 선사들을 선택할 수 있는 보호 장치를 제대로 만든다면 현재 약 20% 수준인 국적선 수송 비중을 50%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에서 배웠듯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이라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정부 차원에서 회생 지원을 중히 고려해야 한다.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친 ‘기업회생지원기구’를 두어 자금을 긴급히 활용토록 함으로써 급한 대로 초기 불을 끌 수 있는 제도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법과 제도를 몰라도 영업은 잘되고 수입은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서는 법을 얼마나 미리 잘 준비해두고,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회사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2010년 일본항공(JAL)은 미리 잘 마련된 회생절차 제도에 의해 항공기 결항 같은 물류대란 없이 성공적으로 회생한 바 있다. 한진해운 회생절차 신청 1주년에 즈음하여 이제라도 우리는 법 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유사 사태를 반복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김인현 한국해법학회 회장·고려대 로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