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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노지현]4년마다 천지개벽한다면

입력 | 2017-09-07 03:00:00


노지현 사회부 기자

서울시를 포함해 시도 등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의 손으로 단체장을 선출한 것은 1995년부터다. 그전에는 국가에서 정해 내려 보내는 관선시장, 도지사였다. 내년 6월에는 민선 7기 지방선거가 열린다. 서울시의 민선 시장은 31대 고건(1998∼2002년), 32대 이명박(2002∼2006년), 33대 오세훈(2006∼2010년·34대 중도 사퇴), 35·36대 박원순 서울시장(2011∼2018년)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인구가 1000만 명에 육박하고 상당수의 경기도 사람도 실생활은 서울에서 하고 있어 서울시가 시행하는 정책의 파급효과는 때로는 매우 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을 할 때 해낸 버스 준공영제 도입, 환승시스템, 중앙버스전용차로제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고가도로와 복개(覆蓋)된 도로를 걷어내고 만든 청계천 물길과 산책로 역시 ‘서울시장 이명박’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줬다. 서울시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의 ‘길’을 뒤따라가려고 서울시장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적지 않다.

4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임기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겠다는 욕망에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반발도 컸다. 오세훈 전 시장은 ‘디자인 서울’에 진력을 다했다. 간판도 제각각인 거리, 난개발로 들쭉날쭉한 도시를 정비하겠다는 의지의 한 방법으로 서울서체(書體)와 서울색(色)을 개발해 도시를 홍보하려 했다. 지금은 광화문광장 지하에 썰렁한 기념품 가게로만 남아 있지만 ‘해치’를 서울의 상징물로 알리려고도 했다. 그러나 2011년 무상급식 관련 시민투표 불발로 중도 사퇴한 후 그의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됐다. ‘왜 꼭 디자인을 시청이 정해줘야 하나’ ‘세빛둥둥섬이 아니라 세금둥둥섬’ ‘겉보기만 중시한다’는 비난과 함께 관련 정책들도 사라졌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운동을 하며 쌓아온 경험들을 시정(市政)에 펼치고 싶어 했다. 소통을 중시하는 그답게 갈등 조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직을 신설했다. 청년지원 정책을 통해 미래 세대에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의제를 제시했다. 도시농업과도 만들었다. 처음에는 ‘서울시에 양봉(養蜂)이 무슨 소리냐’는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시 외곽이나 농촌으로 멀리 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나무나 꽃을 심어보고, 은퇴자는 소일거리로 동네 텃밭이나 농장에서 채소도 가꿔보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늘어났다.

광역단체장뿐만 아니다. 구청장의 정책에도 눈길을 끄는 것이 많다. 서울의 한 구청장은 임기 내내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나 기존 상인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막으려고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협약을 체결하도록 애썼다. 다른 구청장은 구민들이 책을 더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은도서관을 동마다 짓는 데에 4년을 보냈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 새로 시장이나 구청장이 부임하면 이런 정책 가운데 일부는 계승될 테지만, ‘전임 단체장 것만 아니면 다 돼’라는 생각이 강하다면 꽤 훌륭한 정책이라도 홀대받을 확률이 높다.

시대가, 주민이 필요로 하는 정책은 도입하되 전임자의 정책 중에서도 괜찮은 것은 챙겨서 재활용하기를 바란다. 4년마다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듯 ‘새 역사’를 쓰려고 하면 시민도 힘들다. 지방선거가 10개월이나 남았지만 어떤 자치단체장 선거에 나갈지 벌써부터 부산한 정치인들의 발걸음을 보니 괜한 걱정이 든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