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정미경 소설가의 유작 출간한 김병종 서울대 교수
김병종 서울대 교수가 28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고 정미경 소설가의 유작 장편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를 품에 안고 있다. 뒤에 걸린 그림은 김 교수의 작품인 ‘생명의 노래’로 손을 꼭 잡고 춤추는 남녀가 보인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유명 화가인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64)는 ‘가수는 입을 다무네’(민음사·사진)를 손으로 가만가만 쓸어내리며 말했다.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지 한 달 만인 올해 1월, 홀연히 세상을 떠난 아내 정미경 소설가(57)의 장편소설이다. 28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아내의 유작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서울대 캠퍼스를 손잡고 산책하는 김병종 서울대 교수(오른쪽)와 생전 정미경 소설가.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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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를 평소 ‘정 작가’라고 불렀다. 서울대 동양화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한 잡지에 실린 아내(당시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의 소설을 읽고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연인이 됐다. 대학가의 문학상을 휩쓸던 고인과 대학생 때 동아일보를 비롯해 신춘문예에 두 번이나 당선된 그가 주고받은 편지는 400여 통에 이른다. 아들 둘을 낳고 키우면서도 부부는 매일 아침 두 시간씩 문학, 그림, 건축,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예술적 동지였다.
“정서적 교류가 하루아침에 끊어진 게 가장 힘들어요. 시간의 축적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요…. 3, 4년 정도 만났다 헤어진 것 같아요. 내 의식은 이화여대 앞을 서성였던 그 시절을 맴돌고 있어요.”
그는 아내에게 최초의 독자이자 마지막 비평가가 되겠다고 한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한 데 대해 죄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 아내의 작품을 다시 꼼꼼하게 읽고 손으로 문장을 한 줄 한 줄 써 보며 문학적 자취를 되짚고 있다. 고인이 19년간 머물렀던 반지하 원룸 작업실에 쌓여 있던 처절한 고뇌의 흔적인 습작 원고 더미도 정리 중이다.
“정 작가에 대한 평전을 쓰고 있어요. 정 작가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등 치열하게 삶과 부딪쳐 깨지고 피 흘리면서도 삶에 대한 긍정의 물줄기를 담은 인물들처럼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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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인의 글 더미를 정리할 때면 영혼으로 교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가 책을 읽는 한 정 작가의 문학적 삶은 계속되잖아요. 문학인은 떠나도 떠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빈방의 벽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울곤 하는 그가 조금씩 일어서고 있는 게 보이는 듯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