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국가가 복지에 쓰는 돈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어선다.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429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의결하고 9월 1일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예산 증가율이 2009년 이후 최대인 7.1%로 내년 우리 경제의 외형이 커지는 경상성장률 4.5%를 크게 웃도는 전형적인 확장적 재정, ‘슈퍼예산’이다.
이번 예산안은 철도 도로 산업현장 등에 재정을 지원하는 물적 투자를 줄이는 대신 복지 일자리 교육 등 사람에 대한 투자로 국가사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의 성장과실이 서민중산층으로 떨어지는 ‘낙수효과’ 중심의 정책을 폐기하고 서민층의 소득을 늘려 전체 경제가 살아나도록 하는 ‘분수효과’ 중심으로 정책의 틀을 바꾸는 새 정부의 실험에 맞춰 재정의 패러다임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보다 4조4000억 원 감소한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주는 기초연금이 월 20만6000원에서 25만 원으로 오르고 0∼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월 10만 원 수당제도가 신설된다.
복지 예산 확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달 19일 178조 원짜리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할 때부터 예견됐다. 그러나 인건비 국채이자 등 고정적인 경비가 턱밑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복지 지출까지 늘면서 정부가 반드시 써야 하는 법정 의무지출 비중이 내년에 전체 예산의 절반을 넘어선다. 이 비중대로 예산이 확정되면 앞으로 국가자원의 절반 이상이 예산을 짜기도 전에 고정돼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창의적 사업을 재량껏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공약 재원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SOC 예산을 감축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8·2부동산대책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는 국면에서 SOC 지출을 급하게 줄인다면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하면서 대량 실직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제 국회가 포퓰리즘 성향의 복지제도를 걸러내 재정건전성과 양극화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복지가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복지가 재정위기의 도화선이 된다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또한 실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