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하는 한국 자동차산업]<上> 사면초가에 놓인 한국車
《 올해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오토쇼. 중국 광저우자동차(GAC) 메인부스에는 언론과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업체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후발 주자인 중국 업체가 100년 역사의 미국 자동차 도시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7인승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S8와 GE3 등 전기자동차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핑싱야(憑興亞) GAC그룹 회장은 “빠른 시일 내에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내수 침체와 노조 파업으로 어려움에 빠진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토종업체들의 광속 성장에 밀려 구조적인 위기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실탄이 부족해져 친환경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자동차의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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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중 간 사드 논란이 해결되더라도 현대·기아차의 위기가 해소된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초 현대·기아차는 중국 저가시장은 토종업체가,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가성비 시장’은 현대·기아차가, 프리미엄 시장은 일본·독일차가 차지한다는 3각 구도를 전제로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토종업체들의 저가형 SUV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시장점유율이 2013년 15.7%에서 2017년 상반기 25%대까지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중국 토종업체를 피해 단기간에 프리미엄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 데다 현재 기존 판매망까지 붕괴되고 있어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우려했다.
중국 업체들은 스웨덴 볼보에 이어 미국 ‘빅3’ 업체인 크라이슬러까지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앞으로 중국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신흥국 중심의 해외시장에서도 한국 업체와 경쟁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미 중국 정부는 자국 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2020년 400만 대, 2030년 1000만 대를 해외에서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래 시장도 녹록지 않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친환경, 자율주행, 차량공유라는 거대한 산업 격변기에 전방위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하이브리드로 일찌감치 시장을 장악한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수소 전기차가 여의치 않자 최근 순수 전기차(EV) 분야에서 앞선 일본 마쓰다와 손잡고 EV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GM과 포드,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역시 내연기관 투자를 하면서도 미래차에 대한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내연기관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언제 이익이 날지 모르는 분야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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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의 성공 신화를 견인한 수직계열화도 지금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쇳물부터 자동차 할부금융까지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직접 생산·관리하는 수직계열화 전략은 단기간에 글로벌 5위 업체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판매량이 줄고 기술이 급변하면서 현대·기아차 계열사와 협력사들의 이익도 동시에 줄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는 계열사를 외면하고 외부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10여 년간 현대·기아차의 기술 자문에 응해온,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기아차가 품질 안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혁신 능력이 부족해졌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현대·기아차와 부품 계열사들은 세계 최초를 내걸고 부품이나 기술을 거의 개발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는 항상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품질과 안정을 위해 후발 주자로 따라가다 보니 혁신이 없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서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