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좋은 생각 없어?”라고 질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또 “생각 좀 합시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들린다. 이제 더 이상 생각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상황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지위를 지키기 어려워졌다. 바야흐로 생각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생각이란 무엇인가. 생각은 바뀌어가는 현상들 중에서 어떤 일관된 흐름을 포착해 그것을 언어로 개념화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정신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생각이라고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려워한다.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다양한 요소를 비교하며, 장단점을 나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 고전은 생각의 보고
지금도 진화론은 생명의 탄생과 발전을 설명하는 유력하고 타당한 학술로 권위를 잃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생명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종의 기원’은 19세기 중엽과 영국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해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결국 고전은 후대 사람들이 생각을 진행시켜나가는 데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사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을 읽어서 소화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주제가 나에게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고전에서 캐낸 사상 자원을 바탕으로 생각을 요령 있게 전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생각의 형성 단계
생각이 아이디어 단계에 이르러 살이 붙고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기되는 과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장자는 ‘지락(至樂)’에서 생명의 창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최초의 단계를 살펴보면 본래 생명이 없었다. 생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었다. 형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도 없었다. 황홀한 가운데 섞여서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를 갖추게 되고 형이 변하여 생명을 갖추게 된다.”
장자의 말에 따르면 생각도 처음부터 구체화돼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의 자료가 마구 뒤엉켜 있다. 이 상태에서 한 갈래를 잡고 늘어지면 “이게 좋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온다. 그것이 바로 기(氣)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구체적 생각을 더하다 보면 형상화와 개념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형(形)의 차원이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더 보태는 가운데 “꼭 이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들면 생(生)의 차원이 나타난다. 비로소 생각이 제 색깔의 옷을 입고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생각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종종 답답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어 갑갑하기 그지없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 공자처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주위의 격려와 위로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만 수만 갈래의 생각 소(素·물건의 시초나 바탕) 중 일부분이 현실 세계에서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
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