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빌 백작의 범죄/아멜리 노통브 지음·이상해 옮김/144쪽·1만1800원·열린책들
이 소설은 꽤나 두께가 얄팍하다. 집중하면 1, 2시간이면 끝낼 분량이다. 그런데 자꾸만 읽다가 몇 장씩 되돌아오게 된다. 그리 가물가물할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다. 왠지 묘하게 질퍽질퍽 발길을 붙잡는 달까. 깜깜한 숲속의 부엉이소리처럼.
벨기에 어딘가 있다는 플뤼비에 성(城). 그곳에 사는 느빌 백작은 요즘 심사가 복잡하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나 돈 버는 재주가 없다 보니, 결국 성까지 팔아야 할 처지. 하지만 백작은 사교계에서 언제나 훌륭한 파티 접대로 이름 높은 인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가든파티를 준비한다.
노통브의 스물네 번째 소설이라는 ‘느빌…’은 읽는 이를 참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잔혹동화 같기도, 한바탕 부조리 연극을 감상한 기분도 든다. 솔직히 재미없단 소린 못하겠다. 어디선가 ‘쿵짝쿵짝’ 흥겨운 재즈 가락이 들려오는 듯 리듬감도 절묘하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 가지는 우화적인 분위기도 세련됐고.
실제로 프랑스 현지에선 ‘비극과 희극이 버무려진 풍자극’이라며 상찬을 받은 모양이다. 2015년 출간돼 19만 부 이상 팔렸단다. 그런데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이걸 썼을까. 그가 주고픈 메시지는 묵직함일까 경쾌함일까. 왠지 이 소설에서 의구심 한 줄기가 물씬물씬 피어올랐다. “실은 자기도 헛갈리는 거 아냐?” 열혈 팬이 아니라면,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겠다. 원제 ‘Le crime du comte Neville’.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