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문화부 기자
“물론 예전보단 양성평등이 훨씬 나아졌죠. 여성 상사라고 가벼이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시를 내리면 성별이 자꾸 해석의 잣대가 돼요. 여성이라 그런 데에 관심이 많다, 여성이라 이해 못 한다는 식이죠. 오히려 남성 보스처럼 굴어야 ‘역시 트였다’는 피드백이 돌아옵니다. 그럴 땐 또 다른 벽에 갇힌 기분이 들어요.”
딱히 별다른 말을 건네진 못했다. 조심스럽기도 했고. 다만 최근 책들을 검토하다 눈에 띄는 작품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 싶다. 11일 국내에 출간된 미국 소설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이다.
원래 나쁜 일은 몰려오는 법. 어느 날 세 자매는 마차를 몰고 가다 마구잡이로 돌진한 자동차에 들이받혔다. 하필이면 운전사는 악덕 사장으로 유명한 무뢰배. 여성이라 만만했는지 똘마니까지 끌고 와 공갈 협박을 일삼는다. 심지어 납치 방화까지 시도하고…. 우리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목에서 눈치챘듯, 그는 총을 뽑아들었다. 영화 ‘황야의 7인’(1960년)처럼 해결사 총잡이가 된 건 아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OK목장의 결투’(1957년)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버트 랭커스터)라고나 할까. 바로 미 역사상 첫 여성 보안관보가 된 콘스턴스 아멜리에 콥(1878∼?)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소설가 에이미 스튜어트가 2015년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다’. 작가는 자신의 논픽션 ‘술 취한 식물학자’ 집필 자료를 모으다가 뉴욕타임스에서 콥 자매를 다룬 짤막한 옛 기사를 마주했다. 시쳇말로 ‘확 꽂힌’ 그는 2년여 동안 동네 땅문서까지 샅샅이 뒤지고 일가친척도 찾아가 만났다. 그렇게 나온 ‘여자는…’에는 콘스턴스가 보안관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스튜어트는 앞으로 콥 자매 시리즈를 8권까지 출간할 계획이란다.
소설 자체도 흥미롭지만, 작가 홈페이지도 들어가 볼 만하다. 특히 책에 실린 실존인물 설명 가운데 콥 보안관보의 언론 인터뷰 한 자락은 꽤나 인상적이다.
솔직히 이 책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힘들어도 노력하면 된다는 얘기는 요즘 세상에 ‘씨알’도 안 먹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콘스턴스는 키가 6피트(약 183cm), 몸무게는 180파운드(약 82kg)였다. 웬만한 사내 못지않은 체격이다. 하지만 덩치만 좋다고 그 굴곡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문제는 심장의 크기였다. 그 여성 경영인도 어디서 배포로 밀릴 양반이 아니다. 이 지구는 그런 심장들이 모여 변화시켜 왔다. 콥이 든 건, 총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