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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패소땐 車공장 해외로 옮길 수밖에”

입력 | 2017-08-11 03:00:00

완성차 5社, 판결 앞두고 성명




“통상임금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현실화되면 국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을 앞두고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배수진’을 쳤다. 현대·기아·한국GM·르노삼성·쌍용 등 국내 완성차 5개사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10일 성명서를 내고 이같이 밝혔다. ‘탈(脫)한국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이 국내 제조업 생태계 전반을 흔들 수 있는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통상임금 사안에 대한 입장’을 보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절박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동안 노조 및 지역사회의 반발, 여론 악화 등을 우려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생산시설 해외 이전’이란 초강수를 선제적으로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기아차가 1심에서 패소할 경우 노조에 돌려줘야 하는 인건비는 소급분까지 포함해 최대 3조 원에 이른다. 기아차 2분기(4∼6월)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7.6% 급감한 4040억 원에 그쳤다. 최대 3조 원에 이르는 통상임금을 부담할 경우 당장 올해 적자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고문수 전무는 “국내 자동차 생산의 37%를 차지하는 기아차의 경영위기는 1, 2, 3차 협력업체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같은 그룹인 현대차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자동차부품 업계 전체에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쏟아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0일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들이 패소할 경우 8조 원 이상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직원 450명 이상 국내 기업 중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35곳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35곳 중 구체적인 예상 피해 금액을 밝힌 25곳은 지연이자, 각종 추가임금 소급분 등을 모두 더하면 최대 8조3673억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들 기업이 지난해 지출한 총 인건비의 36.3%에 달하는 돈이다.

정조원 한경연 고용복지팀장은 “설문에 응답한 기업만 약 8조 원이고, 나머지 미응답 기업과 아직 구체적으로 사례가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10조 원 이상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35개 기업에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은 총 103건이고 그중 4건만 확정판결이 나 종결됐다. 아직 기업 1곳당 평균 2.8건의 통상임금 소송이 물려 있는 셈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노사가 사전에 충분히 협의했던 임금 문제를 들춰내 다시 문제 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양측의 신뢰가 무너지고 경영 기반을 흔든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터널을 지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2년 연속 하락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여파로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판매량은 2분기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글로벌 생산순위는 인도에 밀려 6위를 차지했고 올해는 7위 멕시코한테도 역전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성명서를 발표한 이날 오전 11시 30분, 현대차 노조는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조별 근무자들이 2시간 동안 파업하는 방식이다. 이번 주말부터 휴일 특근도 중단한다. 현대차는 이번 파업으로 1500여 대(300억 원 규모)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8년 연속 무분규 노사 협상을 타결한 쌍용차를 제외한 기아차, 한국GM 등도 파업을 앞두고 있다. 기아차는 21일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파업 일정을 논의하기로 했고, 한국GM도 노조 찬반투표 및 파업권 확보를 마친 상태다.

서동일 dong@donga.com·이은택·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