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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의 길]어두운 방,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입력 | 2017-08-09 03:00:00

<3> 중국 용정




윤동주 시인의 재학 시절 모습 그대로 복원한 중국 용정중학교 ‘윤동주 교실’. 그의 흉상과 책상, 칠판, 당시 모습을 담은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와이지투어 제공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중국 연길(延吉) 버스터미널에서 용정(龍井)에 가는 표를 사서, 버스를 타고 30∼40분쯤 달리면 용정 시내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내려 다시 제1용정중학교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제1용정중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학교 교실 건물이 보이고, 왼편에 운동장이 있다. 축구 선수였던 윤동주를 체험하려고 용정중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도 해봤다. 윤동주가 갔을 것 같은, 신발 벗고 들어가는 마루가 깔린 용정교회에 찾아가 예배도 드려봤다.

“모진 바람에도 거세지 않은 네 용정 사투리.”

윤동주의 말투를 용정 사투리라고 친구 유영(‘창밖에 있거든 두드려라’·1948년)은 회상했다. 잦은 좌우익의 싸움과 극렬 볼셰비키가 소지주를 린치하는 무서운 밤을 피해 윤씨 일가는 명동 마을에서 북쪽으로 30리쯤 떨어진 도회지 용정으로 이사했다. 해란강이 풍성하게 흐르는 용정에서 아버지 윤영석은 인쇄소를 했지만 이내 실패하고 포목점 등 다른 사업도 변변치 못했다. 1932년 3월 1일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제국이 건국되었다. 그해 4월 용정의 미션스쿨인 은진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하면서 ‘윤동주’라는 이름을 쓴다.

어릴 때 생각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어떤 정신분석학자가 말했지만, 윤동주가 지상에 남긴 시 한 편에는 그의 삶이 모두 들어 있다. 1934년 12월 24일, 17세의 은진중 학생이 쓴 처녀작이기에 덜떨어진 밉상으로 보는데 과연 그럴까.
 

용정중학교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다. 동아일보 DB


  
초 한 대 ─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윤동주, ‘초 한 대’ 전문




‘내 방’으로 상징할 수 있는 용정은 그에게 판타지의 공간이었다. 내 방은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되는 어처구니없는 시간, 낯설고 괴이쩍은 공간이었다. 20평 정도의 초가집, 그 어두운 방에서 윤동주는 시 한 편을 깁는다.

“우리가 용정에 자리 잡은 곳은 용정가 제2구 1동 36호로서 20평 정도의 초가집이었다. 1937년까지 형의 작품의 대부분은 그 집에서 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진중학교 때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다. 축구 선수로 뛰기도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교내 잡지를 내느라고 등사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윤일주, ‘윤동주의 생애’·1976년)

첫 연의 ‘방에 품긴 향내’가 어떻게 마지막 연에서 ‘제물의 위대한 향내’로 승화할까. 그 과정에 판타지가 작용하고 있다.

윤동주의 시 ‘초 한 대’ 육필원고. 유족대표 윤인석 교수 제공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공원은 3단계로 만들어졌다. 입장표를 파는 판타지의 입구인 세속의 공간이 있다. 다음은 미키마우스 등이 나오고 다양한 물건을 파는 쇼핑거리가 있는 동화의 세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신데렐라 공주가 있는 신성한 세계다. 종교시설도 비슷하다. 피곤한 일상에서 몇 단계를 거쳐 신성한 공간에 갔다가 돌아오면, 지겨웠던 공간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일탈(逸脫)을 체험할 수 있다. ‘초 한 대’는 순례자의 길(the Pilgrim’s Road)을 걷는 판타지의 구조를 갖고 있다.

1연에서 술향에 취하듯 ‘향내를 맡는’ 화자와 독자는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선다. 2연에서 하얀 양초인 ‘깨끗한 제물’이 광명의 제단을 무너뜨리는 격이니, 광명의 제단은 인간이 세운 거대한 우상일 수도 있겠다. 3연 성스러운 공간에서는 하얀 양초가 ‘염소의 갈비뼈’로 바뀐다. ‘심지’는 양초 심지인데, 발음이 같은 한자 ‘심지(心志)’라고 썼다. ‘백옥 같은 눈물과 피’는 양초의 촛농일 것이다. 희망 없이 어두운 그믐밤 시대에 보름달이 자신을 쪼개 반딧불로 세상을 쪼끔 밝힌다는 ‘그믐밤 반딧불은/부서진 달조각’(‘반딧불’)도 같은 내용이다. 자신을 녹이면서 ‘그리고도’라며 4연에서 판타지를 빠져 나온다. 이제 ‘책상머리’ 현실로 돌아온다. 스스로 육신을 불살라 ‘선녀처럼 촛불은 춤’추며 어둠을 밝히는 구도자의 춤을 펼쳐 보인다. 5연에서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다는 표현은 꽤 신선하다. 평범했던 촛불의 ‘향내’는 판타지를 통과해야 전혀 다른 ‘위대한 향내’로 풍긴다.

‘광명의 제단’ ‘깨끗한 제물’ ‘백옥 같은 눈물’ 같은 표현은 상투적이기는 하다. 반면 ‘매를 본 꿩처럼/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다’는 독특한 표현은 신선하다. 암흑이 푸드득 도망가도 희망은 금방 다가오지 않는다. ‘살랑살랑 찬바람’(‘창구멍’) 날아들 듯이, 희망이란 늘 희미하게 지리멸렬하다.

그의 거의 모든 시에는 창작일자가 써 있어 일기를 엿보는 기분이다. 말미에 써 있는 1934년 12월 24일이라는 날짜를 보고 독자는 촛불을 바로 예수의 희생으로 잇는다. 성탄절 전날 썼기에 예수를 상상할 수 있으나 자신을 태우는 희생적인 상징, 끊임없이 상승하는 불꽃정신은 윤동주 자신이었다. ‘촛불=깨끗한 제물=염소의 갈비뼈(예수)’를 겹쳐 떠올리며, 스스로 녹아 헌신하겠다는 마음의 채비를 했던 젊은 영혼.

평생 낯선 판타지 공간으로 향했던 디아스포라, 그는 대략 19년을 만주에서, 7개월을 평양에서, 4년을 경성에서, 4년을 일본에서 지냈다. 그에게 낯선 세계는 만주와 평양과 경성과 일본이었다. 어디 있든 그는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길’을 생각하는 초 한 대였다.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미리 한 줄로 요약했다. 깊고 고요한 신화는 이 한 줄에서 시작한다.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