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단독]뱃줄 놔둔채… ‘콧줄 급식’ 4만명 고통

입력 | 2017-08-09 03:00:00

음식 못삼키는 요양병원 등 환자들 뱃줄 영양공급, 부작용-불편 덜해
병원측 장삿속에 시술 권장 안해… 당국, 기관평가때 반영할 필요




#장면1. 벌써 세 번째다. 치매 환자 A 씨(72·여)는 레빈튜브(콧줄)를 잡아 뽑으려다가 또다시 피투성이가 됐다.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A 씨에게 유동식(流動食)을 코에서 위로 공급해주는 콧줄은 ‘생명줄’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는 틈만 나면 “불편하다”며 떼어내려 했다. 주치의는 “2∼4주 간격으로 콧줄을 교체할 때마다 시술을 거부하는 환자와 의료진이 전쟁을 치른다”고 말했다.

#장면2. 파킨슨병처럼 몸이 굳는 ‘다계통 위축증’ 환자 김모 씨(56·여)는 지난해 3월 경피 위루술을 받아 콧줄 대신 뱃줄을 달고 난 뒤 표정이 한결 평온해졌다. 경피 위루술은 배에 구멍을 내 위장으로 직접 유동식을 공급하는 시술이다. 김 씨의 언니(60)는 “콧줄을 달았을 땐 숨쉬는 것도 괴로워해 보기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치매나 파킨슨병 등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대다수 환자가 죽기 직전까지 A 씨처럼 합병증 위험과 고통이 큰 콧줄을 달고 살아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콧줄 시술을 받은 65세 이상 환자는 50만4360명으로 뱃줄 환자(1만1262명)의 44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요양병원과 요양원 환자 중 콧줄 시술을 받은 환자도 4만4730명으로 뱃줄 환자(3440명)보다 훨씬 많다.

의학적으로 콧줄 시술은 음식이 폐로 역류해 염증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 우려가 크다. 뱃줄 시술도 위액이 새어나와 복막염에 걸릴 위험이 있지만 일주일 정도만 관리하면 그 후 부작용 우려가 적다. 뱃줄은 시술비(본인 부담금)가 9만8000∼10만6000원으로 콧줄(2400∼3900원)보다 비싸지만 교체주기가 6개월∼1년이기 때문에 전체 관리비를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뱃줄 시술을 받는 환자가 적은 것은 요양병원의 장삿속과 당국의 불합리한 심사 기준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다수 요양병원은 외과 장비와 인력을 갖추지 않고 있어 뱃줄 시술 시 환자를 다른 대형병원에 보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타 병원에 외래를 자주 다니는 요양병원 환자의 등급을 최하위인 ‘신체기능저하군’으로 조정하는 관행이 있다. 환자의 등급이 떨어지면 요양병원이 청구할 수 있는 하루 입원비가 절반가량 깎여 2만5000원에 그친다. 병원 측이 보호자에게 적극적으로 뱃줄 시술을 권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요양원에는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요양원마다 촉탁의가 지정돼 있지만 2주에 한 번꼴로 방문해 한 번에 수십 명의 환자를 돌봐야 하는 만큼 뱃줄 시술을 할 여력이 없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평가인증원과 건강보험공단이 3년마다 실시하는 요양병원 및 요양원 평가에 콧줄 뱃줄 관련 항목을 넣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에서 콧줄 대비 뱃줄 환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경기 성남시 보바스기념병원의 박진노 원장은 “환자를 요양병원에 맡겨둔 보호자들도 관심을 갖고 뱃줄 시술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