區, 1억 수술비 지원 요청… 시립병원, 첫 폐이식팀 구성… 기증자, 4일만에 찾아내
서울시 보라매병원 폐이식팀이 고난도 폐 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퇴원을 준비 중인 김상훈 씨의 손을 잡고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취통증의학과 이정만 교수, 중환자진료부 호흡기내과 박주희 교수, 김 씨, 흉부외과 황유화 교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7일 서울시 보라매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김 씨는 “빨리 회복해 위암과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 곁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이달 8일 13시간 동안 폐 이식 수술을 받은 그의 걱정은 오로지 어머니 건강이었다. 그는 다음 주에 퇴원할 예정이다.
일용직 근로자로 그날그날 생활비를 마련해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김 씨는 3년 전 호흡이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특발성 폐섬유화증’. 원인을 모른 채 폐가 딱딱하게 굳는 병이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질환이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가 없으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
광고 로드중
올해 초까지만 해도 동작구에는 폐 이식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서울대병원에서 폐 이식을 전공한 흉부외과 황유화 교수(37·여)가 3월 보라매병원으로 옮기면서다. 병원은 김 씨를 수술하기 위해 황 교수를 중심으로 호흡기내과와 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 진료팀 등으로 폐이식팀을 꾸렸다. 국내 시립병원으로서는 첫 시도였다. 지난달 26일 보라매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폐 이식 가능 병원 승인을 받아 냈다. 일사천리처럼 일이 진행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폐 기증자를 찾는 일이었다. 이 와중에 김 씨의 상태는 이달 4일 급속히 악화됐다. 김 씨는 인공심폐기(에크모)에 의지해야 했다. 병원에선 폐 기증자가 나타나기만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은 기증자를 찾기까지 최소 한 달가량을 예상했다. 김 씨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세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김 씨가 인공심폐기를 단 지 불과 4일 만에 폐 기증자가 나타났다.
김 씨에게 찾아온 놀라운 행운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체계와 한 단계 높아진 공공의료 서비스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 장기기증 문화의 확산과 맞물려 이뤄낸 의미 있는 결과이다.
황 교수는 “장기 이식 수술에서 가장 어려운 부위가 폐”라며 “폐 기증자가 나타나도 실제 폐를 이식할 수 있는 확률은 15∼20%에 불과하다. 김 씨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수술을 받게 돼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