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문화부장
사전적 정보를 제공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는 내로남불에 대해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만들어낸 말로 알려졌지만 이문열의 단편 ‘구로 아리랑’에도 유사한 문장이 나온다. … 대변인 시절에 유행어로 밀어붙인 것은 박희태 본인이 맞다”라고 설명한다.
이 표현이 마치 사자성어(四字成語)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은 최근이지만, 그 단어에 담긴 정서의 시간적 뿌리는 가늠하기 어렵다.
심리학자들은 내로남불 현상에 대해 잘잘못을 떠나 지극히 인간적 본능이 발현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아 붕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행동할 때는 관대하지만, 관찰할 때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행위자-관찰자 편향이론도 있다. 개인뿐 아니라 동네와 지역, 사회 차원의 내로남불도 있다. 거칠게 말하면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도 내로남불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역대 정권의 내로남불 공방을 지켜보면 우리 사회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검증과 인사청문회가 무서운 통과의례가 된 백주대낮의 현실에서도 이 공방은 되풀이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위장전입·부동산투기·논문표절 등 공직 배제 5대 원칙은 부메랑이 돼 발등을 찍고 있다. 이 원칙의 기준대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인재가 그리 많지 않다. 부인하고 싶지만 이게 현실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말이다. “내로남불이 인간적 행태라고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다. 5대 원칙에 접근하기조차 힘든 보통 사람들은 옥석을 가렸음에도 드러나는 인재들의 흠결에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킬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진심을 담은 사과로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 진심이 빠져 있는 게 상황을 악화시키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100%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새로운 잣대를 만드는 것이다. 집권당과 야당으로 공수가 바뀌었다고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면 시간낭비다.
혹자는 내로남불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타인보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선비 정신의 회복에서 찾는다. 입에 쓰다고 맛조차 보지 않고, 쓴소리라고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그 이유를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면 더욱 걱정스럽다.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