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줄리언 반스 지음·송은주 옮김/272쪽·1만4000원·다산책방
소설은 쇼스타코비치가 여행 가방을 종아리에 기대 둔 채 초조하게 승강기 옆에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탈린 정권의 눈 밖에 난 그는 한밤중에 들이닥치는 비밀경찰에 가족 앞에서 잠옷 바람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서 있는 참이다.
소설의 1, 2, 3장은 각각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쁜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소비에트 국가로부터 환대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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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된 쇼스타코비치는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쇼스타코비치를 일신의 안전을 위해 체제와 타협한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추구한 인물로 그린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이,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간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본문 중에서)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