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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법이 제대로 섰더라면

입력 | 2017-05-30 03:00:00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부인은 희천(熙川) 지방의 농사꾼이다. 시집온 지 5년 만에 남편이 죽고, 두 살 난 유복자만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다툼 끝에 이웃사람에게 찔려 죽었다. 그런데 부인은 관가에 고발하지 않고 조용히 시체를 거두어 장사 지냈다. 그 뒤로 2년이 지나도록 시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시아버지를 죽인 자는 그 과부가 자기를 두려워하여 원수를 갚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 후기 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1762∼1849) 선생의 문집에 실린 ‘원수 갚은 며느리(報讎媳婦)’ 이야기입니다. 과부와 어린아이 힘만으로는 드센 이웃사람에게 원수를 갚을 수 없었겠죠. 그렇지만 관가에 고발하면 될 텐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던 걸까요.



부인은 밤마다 몰래 서릿발이 서도록 칼을 갈았으며, 칼 쓰는 법을 쉬지 않고 익혔다. 시아버지의 대상 날이 되었다. 마침 장날이어서 시장에 고을 사람이 많이 모였다. 부인은 몰래 다가가서는 칼을 휘둘러 원수를 찔렀다. 그러고는 배를 갈라서 간을 꺼내 가지고 돌아와 시아버지 영전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친 뒤에 마을 사람들을 부르더니, 관가에 이 사실을 아뢰어 달라고 하였다. 관에서는 부인을 벌하지 않고 “효부(孝婦)요, 의부(義婦)요, 열부(烈婦)다” 하면서 살려 주었다.



제 손으로 원수를 갚고자 그렇게 조용히 준비를 했던 것이로군요. 관가에 신고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직접 나서서, 법에 어긋나는 ‘사적 보복’을 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관을 믿지 못해서? 당시에도 만약 ‘사법 정의’가 ‘제대로’ 살아 있었다면 부인이 이렇게 직접 나섰을까요. 법이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으니까 직접 단죄에 나선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법은 늘 강자의 편이었다는 말씀. 사건을 접한 사법당국은 결국 부인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선생은 시를 써서 부인을 기렸답니다.



삼 년 동안 밤마다 칼을 갈다가(三年無夜不磨刀)/가을 매 꿩 채듯 원수 앞에 달려갔네(作勢秋鷹快脫絛)/목 자르고 간을 내어 시아버지 원수 갚고는(斷頸咋肝今報舅)/스스로 이웃 불러 관가에 자수하였네(自呼鄕里首官曹)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