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연탄으로 작업하는 ‘연탄꽃’ 설치미술가 이효열씨
《4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하얗게 타버린 연탄에 꽂힌 장미 한 송이.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 강남역 사거리 한복판에 놓인 이 연탄꽃은 설치미술가 이효열(32)의 작품이다.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는 ‘목련 꽃할머니’전에 그의 연탄꽃이 전시됐다. 전시가 한창이던 지난달 서울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연탄꽃을 처음 만들 무렵 이효열 작가는 예쁜 꽃만 찾았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 예쁜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꽃, 모든 사람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모양이 어떻든 피울 준비가 된 꽃을 찾습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연탄꽃은 그의 대표작품이다. 다 타버린 연탄에 오아시스(물을 머금은 스펀지)를 넣고 봉오리 상태의 꽃을 꽂아둔 것. 연탄꽃을 처음 만들게 된 건 4년 전인 2013년 겨울이었다.
“퇴근길이었어요. 집 앞에 쌓여 있는 연탄이 보이더라고요. ‘연탄은 남을 위해 저렇게 하얗게 불태우고 생을 마감했는데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뭘 하고 있나. 저 연탄처럼 뜨거울 때 꽃이 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사춘기의 가난은 정말 힘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마천루가 즐비한 부촌(富村) 한가운데 놓인 그의 집터는 구경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집에서 나왔는데 사진 동아리 하는 분들이 그 모습을 찍더라고요. 특별하게 취급당하는 것 자체가 상처였어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은 쉬이 잊히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식 날, 꽃 한 송이 사올 형편이 안 됐던 어머니는 여동생과 그를 데리고 편의점에 간다. 1000원어치만 고르라고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와 여동생은 1000원이 약간 넘는 과자를 골랐다. “그때 엄마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1000원이 넘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그 표정요.”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체육학과에 진학하지만 그는 부상을 당했고 꿈을 접어야 했다. 방황하던 그를 사로잡은 건 우연히 접한 ‘권총 굴뚝’ 광고였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환경오염을 경계한다는 메시지를 그토록 간명하게 표현해 내다니…. 그 광고를 만든 이제석 씨에게 배우고 싶어 무작정 메일을 보냈어요.”
그렇게 광고인으로 살게 됐다. 광고는 재밌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어도 그가 하고 싶은 건 순수예술이었다.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 같은 게릴라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어렵게 들어간 광고회사를 결국 그만뒀죠.”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