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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 단독]“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는 것 부담스럽다”

입력 | 2017-05-04 12:56:00

‘통영함 비리 무죄’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인터뷰




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은 인터뷰에서 “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그와 마주앉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건 당시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해군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명분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임기 중 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은 황기철(61) 전 해군 참모총장. 2015년 3월 검찰이 주도한 방위산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통영함 음파탐지기(음탐기) 납품 비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를 구속했다. 그해 10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된 이후 그는 사람들을 피했다. 한국을 떠나 중국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다. 지난해 9월 대법원 판결로 무죄가 확정된 후에도 공식석상에 나타나기를 꺼렸다.  

잊혔던 그의 이름이 세간에 다시 거론된 계기는 정부의 보국훈장 수여였다. 방산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던 전직 장성이 훈장을 받다니…. 몇몇 언론 매체에 그의 ‘억울한’ 사연이 소개되면서 ‘참 군인의 표상’으로 떠받들어졌다. 뜻밖에 ‘세월호 의인’이라는 칭송도 따랐다. 4월 초 한 일간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데 대해 그는 “정식 인터뷰가 아니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얘기가 기사화됐다”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법정에서 완전히 뒤집힌 검찰 수사

-사건 이후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안 만났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는 편이었다. 그런데 믿었던 부하들이 검찰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걸 보고 내가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많이 힘들었다.”

통영함 음탐기 사업이 진행된 것은 2009년. 당시 해군 소장이던 그는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었다. 6년 뒤인 2015년 검찰은 통영함 음탐기가 납품되는 과정에 시험평가 조작 등 비리가 있었다며 사업팀 관계자들을 구속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및 배임 혐의였다. 그는 당시 방사청 상륙함사업팀장 오모 대령 등 부하들과 공모해 성능이 떨어지는 미국 방산업체 H사의 음탐기가 납품되도록 구매 절차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1, 2심에 이어 황 전 총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황 전 총장이) 문제점을 인식했다거나 별도 지시를 했음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에서 황 전 총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다가 법원에서 이를 뒤집은 오 대령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통영함과 별개로 소해함 장비 도입과 관련해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최모 중령은 법정에서 “검찰이 황 총장을 엮으려 수개월간 회유하고 협박했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장비 선정 및 구매절차보다는 계약 이후 사업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즉 제조사가 애초 제시한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음탐기를 납품하면서 비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40억 원에 납품된 통영함 음탐기의 원가는 2억 원이었다.

-검찰이 실적을 의식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성과를 내려 그런 건지, 위에서 어떤 지시를 받고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검찰 수사 전 단계인 감사원의 감사부터 잘못됐다. 감사 과정에서 이미 ‘오로지 총장이 목표’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음탐기 선정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나.

“방사청 사업은 팀 단위로 진행한다. 워낙 사업이 많고 장비가 많아 부장이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관여할 처지가 못 된다. 만약 내가 그때 청탁을 받아 부정을 저질렀다면 뒷날 총장 할 때 통영함 인수를 거부할 수 있었겠나.”

그가 참모총장이던 2013년 12월 해군은 불량 음탐기를 문제 삼아 통영함 인수를 거부했다. 운용시험평가 결과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군 내 문제이던 통영함 사건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계기는 이듬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였다. 최신 구조함인 통영함이 사고 현장에 출동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음모론이 제기된 것. 해군 참모총장이 두 차례나 출동명령을 내렸는데 청와대에서 제동을 걸었다는 게 골자였다.

이 일로 괘씸죄에 걸린 데다 당시 팽목항에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대통령을 맞은 것이 눈 밖에 나 뒷날 방산비리 수사의 제물이 됐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가 느닷없이 ‘세월호 의인’으로 부각된 배경이다.

“세월호 의인 칭호 부담스럽다”

2014년 5월 4일 세월호 참사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방산비리 수사는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게 정설이다. 구속 과정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개입했다고 보나.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게 아니라면, 임기도 끝나지 않은 참모총장을 그토록 무리하게 구속한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정권에 밉보인 게 있나.

“모르겠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일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참모총장을 구속해야 할 정도라면 대통령이 직접 확인했어야 하지 않나. 군 통수권자이지 않나.”   

-‘세월호 리본’을 두고 말이 많다.

“그건 말하고 싶지 않다. 주관적 시각에서들 하는 얘기니까. 다만 (나를 구속한 데는) 뭔가 의도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세월호 의인’으로 미화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부담스럽다. 나는 그저 임무와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 일로 내가 뜨고 싶지도 않거니와 이용당하고 싶지도 않다.”

-사고 당시 통영함은 해군 소속이 아니어서 어차피 출동이 힘들지 않았나. 해군이 장비 성능을 문제 삼아 인수를 거부한 탓에 조선소에 묶여 있지 않았나.

“맞다. 통영함을 현장에 보내려면 별도 계약이 필요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해군은 참모총장 명의로 ‘통영함 투입을 준비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과 대우조선해양, 해군은 양해각서를 맺었다. 제목은 ‘인수 전 통영함 사용에 관한 합의각서’.

-각서 내용은?


“혹시 필요하다면 일시적으로 사용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군함은 인수한다고 바로 작전에 투입하는 게 아니다. 6개월간 승조원들이 장비도 익히고 훈련도 해야 한다. 이를 전력화 과정이라고 한다. 이런 준비 없이 배를 운용하다가는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워낙 큰 사고가 났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출동 준비를 지시한 것이다.”

-청와대가 통영함 출동을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몇몇 유력 정치인도 그런 주장을 폈는데.


“분명히 아니다. 공문 내용도 출동 준비 지시였지 출동 지시가 아니었다.”    

통영함에는 잠수사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감압치료를 받을 수 있는 챔버가 있다. 당시 사고현장에는 청해진함을 비롯해 챔버를 갖춘 함정 3척이 배치됐다. 통영함은 이 배들의 챔버가 고장 나거나 추가로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 출동 준비를 한 셈이다. 하지만 먼저 투입한 함정들의 챔버가 정상 가동됐기에 통영함을 무리하게 동원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해군 측 설명이다. 즉, 외압 때문이 아니라 해군 자체 판단으로 통영함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여전히 사랑한다”

“2년간 재판을 받으며 아닌 걸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은 황 전 총장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그는 잘못된 수사로 해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데 대해 개탄했다.

“해군 문화를 완전히 왜곡했다. 오랫동안 한 배를 타면서 형성된 끈끈한 선후배 관계 때문에 비리가 발생했다고 했다. 비리의 원인을 상명하복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특정 군을 모욕하면서 정체성과 고유문화를 훼손했다. 방산비리 수사는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만 정밀하게 도려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 옆길로 빠졌다. 비리 액수를 부풀려 해군 전체를 비리 집단으로 매도했다. 왜 그랬는지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해군이 유난히 장비가 많아 비리에 노출되기 쉽다는 시각도 있다.

“공군은 패키지 도입이 많은 반면 해군은 배와 장비를 따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구매 장비가 소량이면 국내 업체는 수지가 안 맞으니 안 맡으려 한다. 그러면 해외에서 사들이게 된다. 뭐든지 싸게 구입하려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방예산 중 무기도입 예산을 일률적으로 삭감했다. 성능이 아닌 가격에 맞추다 보면 부실한 장비를 들여오게 된다. 능력도 없으면서 제안가격에 맞춰 입찰가를 낮춘 업체가 따내면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통영함 음탐기만 해도 미국 H사 말고는 응찰한 업체가 없었다.  

한국 해군은 20년 전부터 통일 이후를 대비하자는 대양해군을 외쳐왔다. 단순히 북한을 제압하는 수준을 넘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열강의 위협에 맞서 해양 국익을 지키는 첨단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해군 안팎에서는 핵잠수함과 항공모함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 전 총장도 해군력 증강을 강조했다.

“한반도 주변 해역엔 세계 해군 전력의 60%가 몰렸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해군력이 센 나라들이 다 여기에 있다. 영해 수호뿐 아니라 해저자원 및 해상교통로 확보 차원에서도 해군력을 더 키워야 한다.”

-좁은 한반도 해역에서 그렇게까지 첨단전력을 갖출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지스함을 늘리는 것만 해도 그렇다.

“이지스함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가장 먼저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방어용 무기다. 아직 요격용 미사일은 싣지 못했지만. 미국이 개발해준다 해놓고 아직….”

-미국이 일부러 늦추는 건가.

“그건 모르겠다. 하여간 그게 없으면 반쪽짜리밖에 안 된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아무리 해군력을 키워도 중국, 일본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 않나.


“당연하다. 그래서 고슴도치 전략이 필요하다. 대등하지는 않지만 얕잡아 보지 못할 정도의 전력은 갖춰야 한다. 그래야 국익과 국민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1월 17일 정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 국무회의에서 황 전 총장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하기로 의결했다.

-정부에서 훈장 준다고 할 때 화가 나지는 않았나.


“특정인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켜온 해군 장병의 노고를 대신해 받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어봤나. 혹시 중국에 자주 가는 게 한국이 싫기 때문인가.

“답변하고 싶지 않다. 2년간 재판받으면서 아닌 걸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 과정에 내 가족과 해군이 겪은 고통은 또 얼마나 컸나. 나중엔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은가.

“대한민국을 여전히 사랑한다.”

-중국엔 어떻게 가게 됐나.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기회가 되면 강단에 서려 한다.”

그가 사진 찍기를 한사코 거부해 실랑이가 벌어졌다. 작심하고 나서는 듯한 모양새가 부담스럽고 그간 인터뷰 요청을 해온 다른 언론사들에 미안하다는 게 이유였다. ‘개인의 명예가 아닌 해군의 명예 회복을 위해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겨우 동의를 얻어냈다.

조성식 기자․디지털미디어팀장 mairso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