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마야사 주지 현진 스님
서울 청계천에 설치된 연등. 부처님은 고뇌와 번민에 쌓인 중생들을 위해 이땅에 왔다. 그런 의미를 담은 연등 아래서 자신을 낮추는 하심의 배움이 필요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며칠 전 밤새 비바람이 휘몰아칠 때도 나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소담하게 핀 불두화 가지가 꺾이고 쓰러질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 여기저기 흩어진 꽃가지들을 정리하면서 간밤의 불청객이 원망스러웠다. 마치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가 엉망으로 엉클어진 것 같아서 오늘 저녁나절에도 전지가위로 손을 보고 들어왔다. 가지 부러진 불두화는 내방으로 옮겨와서 화병에 담아 두었더니 연분홍 연등과 잘 어울린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쑥 꽃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비심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매사의 작은 눈길에도 자비심이 결여돼 있다면 부처님 오신 뜻을 등지고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교리 공부를 할 때는 부처님은 도솔천에서 하강(下降)하셨다고 배우지만 엄격히 따지면 자비심에서 오셨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열반경 범행품에 ‘모든 보살과 여래는 자비심이 근본이다’는 표현이 있다. 따라서 부처님은 그 어디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자비심에서 탄생하셨다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명확한 의미는 자비심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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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성불(成佛), 행복, 평화, 건강, 출세 등 이러한 목표와 소원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것은 자비심이 근원이 될 때 생의 보람과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자비심이 근본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은 더 이상 행복의 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물질적 풍요 속에 있지만,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보다 더 불행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된다. 경제학자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는 개인 소득이 1만5000달러 이상이 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지수가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같이 물질의 충족이 보상해 주는 행복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다.
사월초파일이 다가올 때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가르침을 다시 해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 일화를 일찍이 경전에 소개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따져 물을 것도 없이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욕심 없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이미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가난해질 수 없는 인생은 아닌지 살펴보라는 뜻이다. 따라서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삶이 행복을 방해하는 원인이라는 것을 연등 불빛 아래서 새롭게 배워야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왜 행복하지 못한가?’를 질문하고 그 대답을 부처님 오신 뜻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자비심과 만족이 없는 삶은 우리를 불행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소욕지족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 더 유효한 법어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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