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에너지미래포럼 대표
셰일혁명으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필적하는 석유생산국이 되었고 국제유가의 형성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필자가 에너지 담당 차관이던 2008년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고 곧 200달러에 도달한다는 전망도 있었다. 그런데 이듬해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수요가 격감하자 상승세가 꺾여 이후 수년간 100달러대를 유지하는가 싶더니 2015년부터는 아예 50달러 이하로 반 토막이 나 버렸다. 지난해 한때는 30달러대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미국의 생산량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 미국의 유전 개발 현장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작업자들이 거미줄 같은 파이프와 밸브를 연결하고 체크하는 대신 수많은 센서에 의해 현장 상황이 중앙통제실에 빅데이터로 쌓여 가고 있고, 로봇과 드론이 동원되어 시추현장을 감시하고 필요한 보수작업도 수행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시추현장에는 작업자 1명과 로봇 1대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하니, 미국 석유업자들이 손익분기점으로 꼽는 국제유가가 3년 전만 해도 배럴당 60달러였는데 이제는 배럴당 35달러에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술력에서 찾게 된다. 이 기술력을 토대로 석유의 한계생산비용이 가장 낮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국제 석유시장의 주도권을 겨루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생산량 감축에 전격 동의했다. 아람코의 상장을 앞두고 더 이상 유가 하락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원수출국으로 변신하여 국제 자원시장에 큰손으로 등장한 미국을 이제는 동등한 자원부국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기술 하나가 에너지 지형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에너지미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