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부부로 만난 배우 이순재-정영숙
연극 ‘사랑해요, 당신’ 대본을 든 이순재 씨(왼쪽)가 정영숙 씨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이들은 “난 정말 니들 사랑했다. 다만 방법이 좀 달랐고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지”라며 극 중 한상우가 자녀들에게 한 대사가 찡하게 와 닿는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배우 정영숙 씨(70)가 옆자리에 앉은 이순재 씨(82)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아내가 치매에 걸린 70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부부 역을 맡은 이들 사이에는 편안한 공기가 흘렀다. 이 씨는 “평소에 잘 못해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직접 돌보는 거지”라고 답했다. 이 씨가 원장을 맡아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SG연기아카데미에서 지난달 31일 이들을 만났다.
4일 막을 올리는 이 연극에서 이 씨는 무뚝뚝한 전직 교사 한상우 역을 맡았다. 정 씨는 모든 걸 참고 살아오다 치매로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아내 주윤애를 연기한다. 그때껏 윤애가 남편에게 유일하게 바란 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무심한 남편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치매를 앓으니 아내는 뭘 원하는지도 모르게 됐고,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더 미안해진다. 장용(72), 오미연 씨(64)도 부부로 나와 이들과 번갈아가며 출연한다. 가천대 길병원이 제작 지원을 하고 의료 자문도 했다.
“교육자니까 자녀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야단치며 키울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잔소리를 해도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요.”(이 씨)
실제 이 씨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일절 잔소리를 하지 않는단다. 정 씨가 “애정 표현은 하시죠?”라고 물었다.
“안 해.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꽃보다 할배’에서도 나랑 신구는 집에 전화 안 하잖아. 박근형도 아내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다정하게 바뀐 거지 옛날에는 안 그랬어.”(이 씨)
정 씨는 치매 환자를 실감나게 연기하려 애쓰고 있다.
노인이 나온다고 해서 연극이 고리타분할 것이라 여기면 오산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늙은이들이 주책 떠는 게 더 재미있어. 웃기는 장면이 많아요.”(이 씨)
“아휴, 연습할 때마다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정 씨)
이 씨는 미국 대통령 이름을 재임 순서대로 모두 외우는 등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이 씨는 정 씨가 출연한 드라마와 역할, 연도는 물론 상대 배우 이름까지 줄줄 읊었다. 정 씨는 “어머, 맞아요!”라며 연신 감탄했다. 정 씨는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기억력을 유지한다고 했다.
“한 작품 한 작품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어. 연극은 관객과 호흡하고 교감할 수 있어서 특히 매력적이지.”(이 씨)
정 씨는 배우이기에 억척스러운 여인, 주책 맞은 고모 등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어서 참 좋단다. 이 씨는 아내와 여유 있게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 했다. 연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아내와 길게 여행 간 건 태국 푸껫을 일주일 다녀온 게 전부예요. 자연도 좋고 문화적으로도 볼 게 많은 유럽을 열흘 정도 같이 가 보고 싶어.”(이 씨)
정 씨가 “남편과 다녀 보니 별로 편치 않던데요”라고 말하자 이 씨가 “그런가?”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4일∼5월 28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6만 원. 1566-5588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