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경제부 기자
하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동물원은 개장했지만 여전히 조류사 관람은 제한된 상태다. 지금도 이틀에 한 번꼴로 의심신고가 들어오는 등 AI 완전 종식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구제역은 끝났지만 최근 브루셀라가 발병해 축산농가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이번 AI와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3600억 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올해만이 아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AI와 구제역 대응에 들어간 혈세는 총 4조400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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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책만 내놓고 할 일을 다했다는 자세는 곤란하다. 매년 대책은 나왔지만 ‘겨울 발병, 봄 대책’의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어서다. 해마다 △가축 방역 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2011년 3월) △AI 및 구제역 재발 방지 종합대책(2013년 5월) △AI 방역 체계 개선 방안(2014년 8월) △가축 질병 방역 체계 개선 방안(2015년 6월) 등을 내놨지만 바뀐 것은 크게 없다. 근본적인 방안이 빠졌고, 내놓은 대책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대책은 축산농가들이 철저한 방역의식을 갖추는 것이다. 정부 대응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농가를 닦달하기에 앞서 정부의 매뉴얼만 잘 따르면 예방할 수 있다, 설사 발병하더라도 신속하게 퇴치할 수 있다는 믿음부터 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의 가축전쟁 수행 태세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발병 즉시 전시 체제로 전환한 일본과 달리 우리 지휘부는 허둥대며 초기 방역 골든타임을 놓쳤다. 농식품부의 일개 과가 전쟁을 통솔할 정도로 전담조직이 허약하다. 실제 전투를 담당할 방역 현장의 지방자치단체 방역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 예비인력도 확보해놓지 않아 닭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급히 도살 처분에 투입됐다. 방역 대응 매뉴얼은 애매하고, 지시와 보고 체계도 엉망이었다. ‘오메, 이 산이 아닌가벼’ 하고 허둥대는 지휘관을 믿고 ‘돌격 앞으로’를 하긴 어렵다.
AI를 몰고 다니는 철새들에게 한국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릴 수도 없으니 AI 발병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사전에 대비하고 준비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순 있다. 발병하면 호들갑을 떨다가 잠잠해지면 방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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