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바람의 아들’ 이종범 뒤 잇는 ‘바람의 손자’ 넥센 이정후
고등학생이던 지난해와 프로구단에 입단한 현재의 차이를 묻자 넥센 이정후는 “힘”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2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그는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4할대(0.455) 맹타 때문만이 아니다. 새까만 피부에 짙은 눈썹, 표정에서 드러나는 강한 승부욕이 아버지 이종범(47·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을 빼닮았다. 시범경기에서 기량을 인정받으며 개막전 엔트리에 등록된 이정후는 아직 공식경기에 데뷔하지 않고도 벌써부터 아버지의 별명(바람의 아들)에서 본뜬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을 달았다. 팬들은 벌써부터 열광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아버지의 야구인생에서 나의 야구인생으로
2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이정후는 아버지와 관련된 질문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매일 집에서 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른 아버지와 똑같은 아버지, 개인적으로는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2009년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당시 서석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정후(오른쪽)와 KIA에서 뛰던 아버지 이종범이 함께한 모습. 동아일보DB
사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졌지만 기량만큼은 일찌감치 도드라졌다. 2012년 구단의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이정후를 처음 봤다는 고형욱 넥센 단장은 “무등중 재학시절 사실 이종범 선배의 아들이라고 해서 봤는데 콘택트 능력(공에 방망이를 맞히는 능력)이 기대 이상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관찰해왔다”고 설명했다. 휘문고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기량을 뽐내자 넥센 이장석 대표는 지난해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일찌감치 1차 지명으로 이정후를 선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10개 구단 1차 지명 대상자 가운데 야수로는 유일하게 이정후가 호명됐다.
○ 아버지가 못다 이룬 신인왕 꿈 이룰까
고등학교 시절 주 포지션인 유격수를 비롯해 내·외야수로 두루 뛴 이정후는 당분간은 외야 자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포구는 안정됐지만 송구 부분에 불안한 모습이 남아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구단은 장기적으로는 이정후를 내야 자원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현역 시절 이종범 또한 유격수로 주로 뛰었다.
아버지 이종범이 못다 이룬 신인왕의 꿈을 이정후가 대신 이룰 수 있을지도 이번 시즌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1993년 데뷔한 이종범은 그해 득점 1위 등을 기록하고도 삼성 양준혁에게 밀려 인생에 한 번뿐인 신인왕 수상의 기회를 놓쳤다. 만약 이정후가 신인왕을 받는다면 2007년 두산 임태훈 이후 10년 만에 프로 1년 차 순수 신인왕이 나오게 된다.
정작 스스로는 프로 적응에만 초점을 맞추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정후는 “사실 9월 확대엔트리 적용 때까지 1군에 올라오는 게 목표였는데 이렇게 개막전부터 (1군에) 올라올 줄 몰랐다. 그저 빨리 적응해서 팀이 우승하는 데 일조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아들로 많은 것을 받았듯 앞으로 많은 것을 나누고도 싶다”며 인간 이정후로서의 목표도 덧붙였다. 당장 이정후는 계약금으로 받은 2억 원을 곧 기부할 계획이다. 프로야구에 신선한 자극을 일으킬 이정후의 프로 데뷔는 이제 카운트다운만이 남았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