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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도둑맞은 휴가를 찾아서

입력 | 2017-03-27 03:00:00


김유영 경제부 차장

최근 강원 양양은 ‘서퍼들의 성지(聖地)’로 통한다. 겨울인데도 서핑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바다 온도는 10도 안팎으로 육지만큼 춥지 않다. 이들은 “파도를 탈 때 하늘을 날아오르는 짜릿한 기분으로 서핑한다”고 말한다.

양양의 해변은 횟집과 모텔 일색인 여느 해변과 다르다. 크래프트 맥줏집과 커피 전문점, 특색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있다. 날씨가 좋으면 버스킹(야외공연)이나 클럽 디제잉 파티가 열린다. 굳이 서핑을 안 해도 이국적인 풍광을 즐기려는 젊은이들까지 몰려든다.

국내 여행지의 잠재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급감하고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여행을 활성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여행 등으로 출국하는 사람들이 매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국내 여행지가 찬밥 신세가 되고 있지만, 눈을 돌려 보면 국내에도 여행지로 재발견할 만한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 여행지로 내국인을 유도해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내수도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휴식과 휴가에 유독 인색한 우리 문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은 연간 14.2일의 유급휴가가 있지만 이 중 8.6일만 사용할 뿐이다. 글로벌 여행업체인 익스피디아가 총 28개국을 대상으로 휴가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휴가일수는 세계 직장인 연평균(20일)의 절반에도 못 미쳐 꼴찌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휴가를 마음껏 사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국내 여행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우리 국민이 국내 여행을 안 가는 이유를 지난해 설문한 결과 전체의 48.5%는 ‘시간과 여유가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쉬는 날에는 피로를 풀기에 바쁘지 여행까지 떠날 엄두를 못 낸다. 연차를 틈틈이 쓸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을 가는 건 무리다.

최근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한 친구 A가 떠오른다. 그는 주말마다 ‘소도시 여행’을 떠난다. 이전 회사에서 야근은 일상이었고 주말 출근도 허다했다. 반면 새 회사에선 연차를 모두 쓰는 것은 물론이고 당해연도에 쓰지 못한 연차는 이듬해 5월까지 쓸 수 있어서 ‘휴식할 권리’를 보장받았다. 그는 주말 앞뒤로 월·금요일에 연차를 써서 사나흘짜리 휴가를 만들어 소도시 곳곳을 다니게 됐다. 일제강점기 개항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북 군산에서는 군산세관, 일본식 적산가옥 등 근대식 가옥과 영화 촬영지 등을 두루 살펴봤다. 다도해로 유명한 경남 통영에서는 비진도와 욕지도 등 섬 여행을 즐겼고 멍게와 굴 등 미식 여행을 했다.

이처럼 매월 한두 차례씩 휴일과 연계해서 연차를 사용하게 하거나 연차를 모두 소진할 수 있는 문화가 확산되지 않으면 국내 여행 활성화는 자리 잡기 힘들 것이다. 설과 어린이날, 추석만 지정되어 있는 대체 휴일제를 다른 공휴일로 확산시키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물론 국내 여행지도 각각의 특성을 살려 매력적으로 바뀌고 가격 경쟁력이 갖춰야 한다.

‘과로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쉴 권리가 절실하다. 성실과 근면만 강조하던 시기는 지났다. 잘 쉬어야 일도 잘하고 구성원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등 삶이 풍성해진다. 빼앗긴 휴가를 돌려받기만 해도 국내 여행 활성화는 부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김유영 경제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