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검찰에 출두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직 파면 이후 11일 만에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청사 포토라인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전날 변호인단이 예고한 대국민 메시지와는 달리 불과 29자, 단 8초짜리 두 문장이다. ‘송구하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선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로 풀이해 놓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를 지낸 사람으로서 개인적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과 별도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에 대한 사과도, 국민 통합의 메시지도 내놓지 않아 국민은 거북하다.
박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두환 노무현에 이어 검찰에 소환된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이고 탄핵으로 파면까지 된 첫 대통령이자 여성 대통령이다. 탄핵 결정으로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도 참담하겠지만 그런 대통령을 보는 국민의 심경도 다르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밤늦게까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면서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13가지 혐의 모두를 전면 부인한 것도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생 지만 씨가 “내가 아는 누나는 아직까지 (자신이) 잘못했다는 인식이 없을 것”이라고 한 말이 맞는 듯하다. 구속 여부 등 신병처리 결정을 해야 하는 검찰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검찰이 살 길이다. ‘촛불’도, ‘태극기’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향후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끝으로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바란다. 이번 사태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정경유착 관행을 끊는 전기(轉機)가 된다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지금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없앨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며 대통령직을 수행했지만 이제는 수치스러운 관행을 끊어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