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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눈]소상공인 출구전략도 마련을

입력 | 2017-03-20 03:00:00


최수규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1970년대 초반, 미국은 베트남전에 발이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병력 4만7000명이 투입됐지만 승산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점으로 반전(反戰) 여론은 극에 달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다. 물리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며 국내 여론을 챙겨야 했고 퇴각 명분도 확보해야 하는, 그야말로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출구전략은 주로 경제정책에서 강조됐다.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 완화 후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 출구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면 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구전략은 정치, 군사, 경제 같은 분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도 역시 출구전략은 필요하다. 언젠가는 사업을 접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약 80만 개의 사업체가 폐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출구전략을 준비해놓은 소상공인은 얼마나 될까.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폐업이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소상공인은 10명 중에 3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장대한 희망을 안고 창업했는데 폐업 대비책을 마련하라니 이 무슨 초 치는 소린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창업 후 1년 이내 생존율은 60%, 5년 이내 남아있는 업체는 30%에 불과하다.

준비 없는 폐업과 마주하게 되면 일단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찾아온다. 사용하던 집기와 설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매장 원상복구 문제로 건물주와 분쟁에 휘말려 행정 처리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것이 다반사다.

소상공인은 고용보험 가입률이 0.5%에 불과하다. 임금근로자와 달리 폐업 즉시 소득이 끊겨 국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준비 없는 폐업은 직접적으로 당사자에게 많은 손실을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준비된 폐업을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절실한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 정책은 창업에 집중돼 있다. 별도의 창업지원기관을 두고 연간 수천억 원의 예산이 창업에 지원되는 반면 폐업 관련 지원 예산은 전체 소상공인 지원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상공인들의 폐업 관련 정책 수요는 많다. 소기업·소상공인들의 폐업을 대비해 퇴직금 조성 목적으로 도입한 노란우산공제에 자발적으로 90만 명이 넘게 가입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았던 작년 한 해 연간 최대로 20만 명이 가입한 점을 볼 때 소상공인들이 경기가 어려울수록 스스로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소상공인이 지금의 열악한 경영환경에서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 정부가 이제라도 폐업 지원으로 관점을 돌려야 한다. 소상공인이 허둥지둥 폐업하지 않도록 사업정리 컨설팅, 세무 상담, 폐업 집기 중개 플랫폼 운영 등 폐업 원스톱 지원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소상공인이 폐업한 후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란우산공제 가입 지원, 재기·전직 등의 지원 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폐업 지원이 오히려 최대의 창업 지원 정책일 수 있다. 안정적인 폐업이 창업을 북돋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수규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