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열풍’ 네덜란드 총선 현장을 가다 <하> 양극 치닫는 유권자 정치 성향
네덜란드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중소 정당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위쪽 사진은 헤이그 시내에 붙어 있는 정당들의 포스터. 무려 28개 정당이 후보를 냈다. 아래쪽 사진은 극우 자유당 강세 지역인 암스테르담 북부 폴렌담에서 친 유럽연합 정당인 민주66(D66)의 포스터를 붙이고 영업 중인 푸드트럭. 헤이그·폴렌담=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폴렌담은 PVV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틀 전 비공개로 찾은 곳이다. 그는 테러 위협으로 유세를 중단한 지 열흘 만에 첫 일정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2012년 총선까지 자유민주당(VVD) 강세 지역이었으나 2014년 유럽의회 선거 때 PVV가 약 50%를 득표했다. 15일 총선에서도 PVV가 이곳에서 1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30대 푸드트럭 주인은 D66 포스터를 붙인 이유를 묻자 “다섯 살 된 아이와 배 속에 아이 둘이 있는데 그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서는 하나 된 유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앞에서 만난 대학생 마인 씨(25)는 “단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이민자가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고 EU도 별 도움이 안 된다”며 “빌더르스 이야기가 가장 맞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반면 양당 체제를 구성해 온 VVD(40석)와 노동당(PvdA·38석)은 이번 총선에서 25석과 13석으로 급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처럼 이념과 상관없이 PVV와 D66, 녹색당 등 소규모 정당들이 힘을 받는 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시민 중 기존 주류 정치에 호의적 반응을 보인 이는 거의 없었다. 헤이그에서 만난 로버르트 디스트라 씨(21)는 “연합정부를 구성해 비슷한 정당들이 계속 돌아가며 집권을 했는데 우리를 위해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불평했다.
가공·중계무역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국제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자연스레 외국과 접촉이 많아 가장 개방적인 국가로도 꼽힌다. 게다가 1월 실업률이 5.3%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왜 EU 탈퇴와 보호주의를 선언하는 극우 성향의 PVV가 인기일까. 마인 씨는 “본토 사람에겐 정체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위기가, 저소득층에게는 경제적 위기가 찾아왔다”고 진단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스트 정치인 핌 포르타윈이, 2004년에는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각각 이민자 출신에게 살해당했다. 게다가 1960년대와 1970년대 인력 부족으로 대거 받아들인 모로코, 터키 출신 노동자들이 자식을 낳으면서 이들이 전체 인구의 10% 정도까지 늘어나자 곳곳에서 이슬람 문화와의 충돌을 경험하며 정체성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
네덜란드 하원은 150석 전원을 비례대표로 뽑는다. 0.67%만 득표하면 의석을 가질 수 있는 다당제 구조라 이번 총선에 출마한 정당 28개 중 14개 정당이 의석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구성은 제1당이 키를 쥐고 있지만 50% 의석수를 차지하지 못할 경우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소규모 정당인 PVV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총선 이후 네덜란드 정치도 ‘시계 제로’다. 빌더르스가 제1당을 차지해도 현재 여론조사에 따르면 20% 정도 수준이다. 나머지 모든 정당이 “비정상적인 PVV와는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라 현재로서 PVV의 집권은 힘들다. 반면 PVV를 빼고 연정을 구성하려면 다른 정당들은 무려 5, 6개 정당 간 연합이 필요해 정치적 혼란이 예상된다.
네덜란드에서 만난 시민 4명 중 1명은 총선이 열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선거 벽보조차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한국 기자가 자국의 선거를 취재하러 왔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전날 빌더르스 인터뷰 때 바글거리던 각국 기자들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 결과는 다른 나라들의 관심이 더 큰 것 같다.
폴렌담·헤이그=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