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붕괴]‘수포자’ 없는 美수학교육의 힘 학년 달라도 한 교실서 배우기도… 학교가 선행학습 프로그램 지원 문제풀이보다 원리 이해에 중점
시카고 교외 글렌브룩노스고교의 수학 수업 장면. 컴퓨터와 전자계산기 등을 이용해 다양한 응용문제를 풀고, 교사 및 다른 학생과 문제 푸는 방식을 놓고 토론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사진 출처 글렌브룩노스고교 홈페이지
그런데 미국과 한국의 수학 공교육을 모두 경험한 학생들은 “미국에선 수학이 너무 쉬워서 수업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거나, 너무 어려워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되는 경우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왜 그럴까. 수학 초보자부터 수학 영재까지 수용할 수 있는 분야별, 그리고 단계별 교과과정이 마련돼 있는 데다, 정규수업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수학 교육이 학년이 아닌, 수준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같은 고교의 9학년(한국의 중3)과 12학년(한국의 고3)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상황이 어색하지 않다. 서울 강남의 자립형사립고에서 올 초 뉴욕 공립학교로 전학 온 H 양(17)은 “대수학, 기하학, 미적분학 등 교과과정만 무려 16개인 것에 놀랐다. 상담교사가 한국 학교 성적과 사전평가 시험 결과를 토대로 내 수준에 맞는 수학 반을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한국 수학 교육이 문제풀이 중심이라면 미국은 개념과 원리 이해하기가 기본이다. 대부분의 수학 시험에서 전자계산기 사용을 허락하는 이유도 단순 계산 능력보다 개념 이해 정도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에선 ‘진도를 빼야 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질문하면 눈총을 받지만 미국에선 ‘이런 공식은 왜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느냐’며 토론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뉴욕주립대의 로버트 이브스 교수(수학 전공)는 “수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지만 재미있게 공부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수학 교육자들은 ‘수학을 더 흥미롭게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