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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0억… 끝모를 전세자금 대출 사기

입력 | 2017-03-01 03:00:00

허술한 은행 심사제 허점 노려 명의 대여자 모집해 허위계약서
대출금 타내면 중간서 가로채
주택금융公, 5년간 250억 대신 갚아… 정작 필요한 서민들 혜택 줄어

정작 필요한 서민들 혜택 줄어




“이름만 잠깐 빌려주세요.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유모 씨(36)의 말에 노숙자 여러 명이 솔깃했다. 크게 쓸 일 없는 이름 한 번 빌려주면 술 한잔 먹을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숙자 15명이 유 씨에게 자신의 신상정보를 알려줬다. 유 씨는 이렇게 모은 이름을 전모 씨(38)에게 넘기고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전 씨는 넘겨받은 이름을 임차인으로 하는 가짜 부동산 전세계약서를 만든 뒤 금융기관에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낸 혐의다. 유 씨는 ‘작업대출’ 사기 조직에서 가짜 명의자를 구하는 모집책, 전 씨는 대출 전 과정을 지휘한 총책이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부장 고은석)는 명의 대여자를 모집해 20억5200만 원의 불법 전세자금 대출을 받도록 한 혐의로 유 씨를 구속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전 씨 등 3명과 대출을 도운 혐의로 신용협동조합 직원 2명을 구속 기소했다.

주택전세자금 대출은 전세 보증금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연 2%대의 낮은 금리로 정부에서 돈을 빌려주는 제도다. 이때 금융권에서 대출서류 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는 점을 노려 가짜 명의를 내세워 임차인으로 꾸미고 불법 대출받은 자금을 가로채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북부지법은 재직증명서와 임대차 계약서 등을 위조해 13억4000만 원의 불법 대출을 받은 일당 10명에게 실형을 내렸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의 명의를 이용해 가짜 서류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세대출 사기조직은 심사 과정에서 대부분 현장실사가 없다는 점을 노린다. 이 과정에서 유령 회사를 만들어 가짜 재직증명서를 제출한 뒤 은행이 확인 전화를 걸면 사기조직의 사무실로 연결되는 수법까지 동원한다. 특히 금융기관의 위험 불감증도 문제다. 임차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도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가 주택신용보증기금으로 대출금의 90%를 대신 갚아준다. 사기 사건이 잇따르는데도 서류 심사가 느슨한 이유다.

주금공이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자금 사기대출로 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주금공이 대신 변제한 경우는 최근 5년간(2011∼2015년) 422건 총 250억 원에 달한다. 피해를 갚는 데 세금이 쓰일 뿐 아니라 진짜 전세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이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주금공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장실사 등 대출 심사를 강화할 경우 집주인들이 전세 대출을 기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금공 관계자는 “사기 예방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전세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 현실적으로 심사를 강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세청 소득자료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납부 명세 등 정부가 가진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중 점검을 하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야 best@donga.com·백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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