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피겨스/마고 리 셰털리 지음·고정아 옮김/416쪽·동아엠앤비·1만7000원
숨겨진 천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단지 흑인이란 이유만으로 냉정한 차별과 편견에 부딪쳤던 세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담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거대한 성취 뒤엔 언제나 ‘가려진 사람들’(Hidden Figures)이 있게 마련이다.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리장성을 보며 그것을 쌓아올린 벽돌공을, 프랑스의 개선문을 보며 노동자들의 땀방울을 떠올렸듯 작가 마고 리 셰털리는 미국의 화려한 우주개발 역사 뒤에 가려진 흑인 여성들의 삶에 주목한다.
책의 배경인 1950, 60년대 미국은 여전히 차별이 만연했다. 노예해방이 이뤄진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버스에는 백인과 흑인 좌석이 나뉘어 있었고, 화장실조차도 따로 써야 했다. 지금 들으면 ‘세상에 이런 일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이지만 당시엔 일상이었다.
천재적 두뇌를 가진 세 흑인 여성의 일상도 다르지 않았다. 더 높은 학위를 지녔지만 백인들로 구성된 팀과는 격리된 채 근무했다. 식당에서도 ‘유색인 컴퓨터’(당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한 유능한 수학자를 컴퓨터라 불렀다)라는 종이가 놓인 지정 좌석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힘겨운 시대였지만 이들은 차별에 굴하지 않았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며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책을 위해 무려 5년 동안 자료를 조사했다는 작가는 이 성공담이 비단 세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며 “1943년부터 1980년까지 랭글리 기념 항공연구소에서 컴퓨터, 수학자, 엔지니어 또는 과학자로 일한 흑인 여자의 이름을 쉰 명 가까이 댈 수 있다”고 덧붙인다.
책을 바탕으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 ‘히든피겨스’는 미국에서 먼저 개봉한 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백악관에서 열린 특별시사회에서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어 매우 자랑스럽다”며 ‘별 다섯 개’의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26일(현지 시간) 열리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도로시 본 역할을 맡은 옥타비아 스펜서가 여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작품상과 각색상에도 후보로 올랐다. 영화는 국내에서도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