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이후 한국사회를 말한다]<4> 촛불과 여성
촛불광장에서 표출된 여성의 목소리는 탄핵정국 뒤 대선에서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여성학자 정희진 씨의 전망이다. 정희진 씨 제공
‘페미니즘의 도전’ ‘아주 친밀한 폭력’ 등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 씨(50)는 “‘더러운 잠’은 여성혐오가 맞다”고 일축했다. 6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국정농단과 촛불정국에서 불거진 각종 젠더(gender·사회적 성)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과 관련된 얘기가 먼저 나왔다.
“표현의 자유는 원래 약자를 위한 권리입니다. 한국 사회는 종종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권력’을 혼동하죠. 누드화에 박 대통령을 합성한 행위는 공적 권력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아닌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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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등장한 노래 가사는 박 대통령을 ‘년’이나 ‘아줌마’로 지칭해 여성혐오 논란이 벌어졌다. 정 씨는 “놈과 년, 아저씨와 아줌마는 같은 위상의 단어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아줌마의 어원은 ‘임신한 여자’로 여성의 정체성을 임신과 출산으로 제한한 개념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을 지칭하는 년을 남녀를 막론하고 모욕을 주고 싶을 때 사용해 왔어요. 심지어 군대에서 남자들끼리 욕할 때도 그 단어를 쓰죠.”
최순실 씨 모녀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행위뿐만 아니라 외모로도 비난받았다. 특검에 출석한 조 전 정관의 민낯 논란이 바로 그 예다. 여성의 존재성을 외모로 환원시키는 건 좌우, 남녀 할 것 없이 마찬가지라는 게 정 씨의 입장이다.
“심지어 요즘은 여성 작가들의 외모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언어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무기인데, 이마저 외모와 대결해야 하는 세상이죠. 박경리 박완서 작가가 예뻐서 위대한 게 아닌데 말이죠.”
‘광장의 조증(躁症), 일상의 울증(鬱症)’, 일각에서는 이번 촛불집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일상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광장을 찾는 시민도 있다는 의미다. 그는 “광장의 민주주의가 현실 정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일상의 정치 영역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사회의 조직 문화, 학교, 가족, 인간관계는 스트레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광장은 이러한 문제가 함께 표출된 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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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여성에겐 위협의 공간이기도 했다. 집회에 참가한 50대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그그는 “광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나온 ‘시민’이 아니었다. ‘시민’이 아닌 ‘남자’가 광장을 악용한 셈이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광장에서도 여성 인권은 존중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탄핵정국 뒤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부각될까. 그는 “역대 미국의 대선처럼 동성애, 낙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진 않겠지만 이전의 그 어떤 선거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클 것”이라고 봤다. 이어 “만일 대선 후보가 실수 혹은 젠더에 대한 무지를 보이면 젊은 여성 유권자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정희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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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