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 집필 ‘기 센 언니’ 5인이 주장하는 한국의 성교육 현주소와 대안
1월 24일 서울 종로구 ‘건강과 대안’ 연구실에서 만난 젠더건강팀 연구원들. 의학 약학 사회학 인류학 보건학 전공자 5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피임에 관한 상식과 정보 등을 다룬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을 지난해 12월 출간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지 마라?
지난해 말 출간한 ‘…피임사전’은 원래 서울시 여성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비매품으로 500부만 세상에 나올 예정이었다. 허나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으로 1000부를 늘려 찍었다. 그래도 주문이 쇄도해 곧 2쇄 발간을 검토 중이다.
“대표적 사례가 콘돔이지. 대다수 국내 남성, 심지어 일부 여성도 콘돔을 착용하면 성감이 떨어진다고 믿어. 벌써 그렇지 않단 조사 결과(2009년 미국 내셔널서베이)가 수두룩하게 나왔는데. 해외에선 꼬마도 아는 상식인데 말이야.”
요원은 발끈했다. 지구에 첨 왔다고 바보로 아나. 애들이 그걸 어떻게 아나.
“당신, 어느 별에서 온 거지?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5세부터 성교육을 시켜. 당연히 콘돔·피임약 사용법도 가르치지. 물론 한국도 초등학교부터 교육과정은 있어. 그런데 내용이 ‘성폭력 대처법―이성 친구와 집에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2015년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수준이거든. 캐나다에선 이런 비과학적인 시각을 가르치는 교사는 해임은 물론이고 법정에 서게 돼.”(이유림·인류학 전공)
뭐, 그렇다 치자. 그래도 ‘한국적 상황’이란 게 있으니까. 피임도 알아서들 잘하잖나.
○ 21세기에 비닐봉지 콘돔 찾는 10대들
도대체 한국은 왜 이렇게 성교육 후진국이 됐을까. 실제로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찾아보면 ‘랩 콘돔’ ‘비닐봉지 콘돔’이란 말까지 나온다. 콘돔 구매가 제한적인 청소년이 나름 찾아낸, 정말 웃음도 안 나오는 ‘자구책’이다.
“이런 얘길 하면 ‘그럼 청소년 성생활을 권장하잔 소리냐’는 반발이 나와. 이런 편견이 문제를 키우는 건 인정하질 않고. 미국은 청소년에게 무료로 콘돔을 나눠주고, 성상담도 자유롭게 받게 해줘. 덕분에 낙태율이 역사상 최저로 떨어졌어. 한국은 높은 양반이 점잔 빼고 있는 동안 어린 여성들만 온몸으로 피해를 입고 있단 소리야.”(윤 전문의)
그때 갑자기,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뒷문을 박차고 들어온 에이전트2(정양환).
“잠깐, 모두 손들어! 무기를 버리고 투항….”
“아, 또 다른 포획감이군. 그럼 첨부터 다시 설명해 볼까. 당신, 정관수술 하면 정력이 약해질까 아닐까.”
젠장,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취는 아파요.’ 이러다 MIC가 연건대 산하기관이 되는 건 아닌지. 하긴, 좋은 취지라면 뭔들 못 하겠냐만.(다음 회에 계속)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