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도입하는 초중고 성교육 새 교재 동화 재해석하고 명화 감상하며 자연스럽게 성 관련 지식 쌓아 말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 교육, 수업에 활용해 스스로 답 찾게
3월부터 서울 지역 고등학교에 도입되는 성교육 교재.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줄거리, 등장인물의 문제점 관련 질문, 신윤복의 ‘단오풍정’,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서울시교육청 제공
이처럼 고전문학 ‘춘향전’의 일부가 고등학교 성교육 교재에 실렸다. 학생들은 춘향이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는 모습을 통해 ‘성적 자기 결정권’ 개념을 익힌다. 현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사또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춘향에게 성적 행위를 강요했다. 학생들은 성교육 시간에 춘향전을 읽으며 변 사또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고, 직권남용, 불법 체포와 감금, 뇌물수수 등의 혐의를 받게 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서울 초중고교에 보급할 이 같은 방식의 성교육 자료를 개발했다고 25일 밝혔다. 3월부터 서울시내 고교에 도입되는 ‘예술 작품 활용 성교육 워크북’에는 춘향전 외에도 각종 문학 미술 등 예술 작품이 담겼다. 생식기의 위치와 명칭을 익히는 지루한 강의 위주의 성교육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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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에서는 질문이 핵심이다. 학생이 스스로 궁금한 점을 떠올리게 하고 교사나 또래 친구와 질문을 주고받으며 답을 찾는다. 이러한 교육 방식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행동과학연구소가 학생이 학습하고 24시간이 지난 뒤에 두뇌가 기억하는 정보의 양을 따져보니 강의식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총정보량의 5%밖에 기억하지 못했지만, 토론을 한 후에는 총학습량의 50%를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브루타 수업 모형을 적용해 성교육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서울 양진초교 김성효 보건교사는 하브루타 방식 성교육의 효과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 교사는 “질문을 만들려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라며 “문제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상대는 어떤 기분이 들까에 대해서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민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 가치관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브루타 수업에서 교사는 지도자가 아닌 조력자, 협력자로 기능한다. 예컨대 학생들이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토론을 마치고 나면 이 권리가 내가 원하지 않는 성 접촉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권리를 행사하면서 타인의 자율권 또한 해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고 정리해 줄 수 있다. 성관계 시 임신과 감염병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하고, 임신의 시기와 자녀 터울에 대한 결정,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항하는 것 모두가 성적 자기 결정권 행사의 예가 된다고 덧붙여 이야기해 주는 방식이다.
이번에 개발된 성교육 교재에는 흥미를 끄는 내용이 많다. 고교용 교재에 수록된 고전 작품 재해석하기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선녀와 나무꾼’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선녀는 형법 제245조(공연음란)를, 나무꾼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2조를 위반했고,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잠들어 있는 공주에게 왕자가 일방적으로 키스를 하는 것이 성폭력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못된 성 가치관, 행위를 찾아 비판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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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자 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과 장학사는 “학생들이 교재를 통해 올바른 성가치관을 가질 뿐 아니라 문학 등 예술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 분석을 하며 감상·비평 능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교재는 담임·보건·교과 교사가 창의적 체험 활동·교과 시간 등을 활용해 쉽게 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는 1년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성교육 15차시 가운데 4∼5차시를 이 교재로 수업할 수 있다.
:: 하브루타 ::
짝을 지어 질문·대화·토론·논쟁을 하는 유대인의 교육 방식.
노지원기자 z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