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도쿄 특파원
지난주 송별회에서 만난 그는 “3월부터 서울의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 이론을 공부한다. 한국 영화를 일본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이른바 ‘한국 마니아’다. 대학 때 어학연수와 교환학생으로 두 차례 찾은 한국의 매력에 빠졌다. 한국어도 유창하고 휴가 때마다 한국을 찾는다.
일본도 신문 구독자가 줄고 있지만 아사히신문은 아직도 일본 내에서 안정적인 직장으로 통한다. 그럼에도 박차고 나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는 “공부를 마친 후 고향 고베(神戶)로 돌아가 한국 책과 영화 등을 공유하는 문화공간을 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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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조선’ 한국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걸까. 답변은 다양했다. 한 명은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일본보다 가깝고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일본과 달리 다이내믹한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지난해 말 부산 위안부 소녀상 설치 후 양국이 점차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점이다. ‘친한파’로 꼽히는 한 일본인 교수는 연하장에서 “한일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차기 대선 주자 중 누군가가 집권 후 ‘위안부 합의 백지화’를 내세우며 대일(對日) 공세를 펼 경우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부 이슈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지지율이 오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뒤집자는 한국 측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까. 그러면 한국과 일본 여론은 어떻게 움직일까. 분명한 것은 한일관계가 전례 없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마니아’는 일본인 전체로 보면 일부다. 거리에는 “조선인은 돌아가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혐한 시위대가 있고, 인터넷에는 ‘한국이라면 질린다’는 혐한 게시물이 판친다. 한일관계가 좋아지면 한국 마니아의 어깨가 펴지고, 나빠지면 혐한 시위대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그 중간을 오간다. 내각부 조사를 보면 한일관계가 좋을 때 열 명 중 여섯이 한국에 ‘호감을 느낀다’고 답했지만 지금은 이 비율이 넷으로 줄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이 과거사 반성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한일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가선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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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