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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풍에 손발 묶인 기업들… “규제법안-특검수사로 꽁꽁”

입력 | 2017-01-18 03:00:00

‘자국산업 살리자’ 세계는 뛰는데…




민생물가 점검회의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7일 국회에서 새누리당과 가진 민생물가 점검회의에서 턱을 만지며 정우택 원내대표의 말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유 부총리,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기업 유인책을 쏟아 내고 있다. 해외 기업에 대한 ‘회유’와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이 17일 ‘5년간 31억 달러’라는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밝힌 것도 이런 흐름에서다.

 한국은 거꾸로 ‘기업 하기 힘든 나라’가 되고 있다는 게 재계 정서다. 사실상 대선 레이스에 접어든 국내 정치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기업 전반으로 이어지면서 반기업 정서도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의 지나친 기업 압박은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재계는 반발한다. 국내 기업들이 좋은 경영 환경을 찾아 글로벌 생산 기지의 중심을 해외로 옮겨 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 정치권 개혁 대상된 기업

 지난해 5월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출범한 후 국회에서는 대기업 규제 법안이 경쟁적으로 발의됐다. 지난해 하반기(7∼12월) 최순실 게이트가 이슈화되자 이런 움직임은 더 거세졌다. 여권에서도 기업 규제 법안 발의에 동참하는 의원이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는 일찌감치 시작된 대선 레이스가 불을 붙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10일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라고 선언해 재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는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자추천이사제, 모(母)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법적 문제에 연루된 재벌 총수를 대상으로 소액 주주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대표소송단독주주권 등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해 7월 발의한 상법 개정안 내용도 대부분 계승했다.

 김 전 대표의 상법 개정안은 소액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기업 지배 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을 입법 취지로 하고 있다. 문제는 법안의 취지와 달리 국내 기업들을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으로 만들 소지가 많다는 데 있다. 각 주주에게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주당 의결권을 부여한 뒤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이를 활용하면 단기 수익에만 집착하는 투기 자본도 손쉽게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 투기 자본에 휘둘리는 기업은 중장기 투자 계획을 추진하기 어렵다.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서 감사위원을 따로 뽑는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입법 사례가 없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핵심 계열사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곧바로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고 반발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상법 개정안은 소액 주주가 아니라 투기 자본의 배만 불릴 상시적 경영권 위협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대로 입법이 이뤄지면 국내 대부분의 상장사에서 투기 자본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기업 투자 냉각 우려

 현대차그룹이 이날 밝힌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 전문가들은 ‘예고된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의 행보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겠지만 이미 많은 기업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외에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가 남이가’ 같은 말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했다. 철저히 경제성을 따지는 게 생리인 기업으로서는 정치·사회적 상황, 경영 환경, 기업에 대한 주변 정서 등을 모두 고려해 가장 좋은 조건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이어지면 기업은 자연스럽게 해외로 이전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특검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기업들에 큰 부담이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당선인과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대표 간 간담회에 초대받고도 가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시작한 특검이 이 부회장의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취임식에 국내 기업인 중 유일하게 초대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참석이 불투명해졌다. 최근 건강 상태와 관련해 주치의가 “장시간 비행은 어렵다”라는 소견을 냈다. 트럼프 인맥이 거의 없는 국내 재계로서는 미 정부 관계자들과 초기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잇달아 잃고 있는 셈이다.

 최근 SK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잇단 발표로 모처럼 부는 듯했던 ‘투자 기대감’도 주춤할 수 있다. 특히 삼성그룹은 18일 결정되는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관건이다.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이 부회장이 덜컥 구속될 경우 삼성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다음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SK 역시 최태원 회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결론지어질 때까지는 추가적인 투자 계획을 확정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동일 dong@donga.com·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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